2009년 6월 19일 금요일

광장

서울시청앞의 서울광장이 현재의 잔디광장으로 조성된 것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축구대표팀의 응원중심지로 떠오르면서 부터였다. 서울광장의 역사는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제국의 황제 자리에 오른 고종은 나라의 기틀을 새로이 하기 위해 덕수궁 대한문 앞을 중심으로 하는 방사선형 도로를 닦고 앞쪽에는 광장과 원구단을 설치했다. 이때부터 대한문 앞 광장은 고종황제장례식과, 3·1운동,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시위, 6월 항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요무대가 되었다. 가까이는 작년 5월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지난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노제가 열려 광장을 시민들의 물결로 가득 채웠다.
6 월 10일, 6월항쟁 22주년을 앞두고 집회장소 확보를 위해 야당 국회의원들이 돗자리를 깔고 노숙을 감행, TV예능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던 '1박2일'이 수도서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애초의 원인제공자는 정부였다. 이명박정부는 노 전대통령의 장례기간 내내 경찰버스를 동원해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던 잔디광장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시민들의 출입을 봉쇄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던 것이다. 연일 시국성명과 거리시위가 이어지고 또 그에 맞선 사람들의 성명전과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언론도 학자도 시민사회단체들도 서로 패가 갈려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다. 소통과 협력의 장이어야 할 광장은 어느새 단절과 대립의 장으로 변하였다.
(중략)
물리적인 공간인 광장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저절로 소통과 상생의 광장문화가 형성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누군가가 서울광장이 형성되는 배경을 얘기하면서 '거리를 광장으로 만드는 마술'이라고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는 '공간이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간을 만드는' 문화라고 하였다. 시민들이 위임해준 공권력을 시민들의 광장출입을 봉쇄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화, 광장을 빨간 색 혹은 노란 색 한가지 색깔로만 온통 물들일 때만 성취를 느끼는 문화, 이런 문화가 지속되는 한 광장이 있으되 그것은 광장이 아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소통하는 성숙된 광장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노력만이 반 세기 전 소설속의 이명준과 같은 비극이 오늘날 또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회지에 쓴 칼럼의 일부이다. 칼럼 전문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