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와 공동체적 인간형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제창한 ‘제3의 길’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학자로 주목을 끌고 있는 앤서니 기든스가 최근 한국을 방문하였다. 기든스는 현재 구미사회에서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중도좌파 이념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학자다. 기든스가 1994년 출간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을 찾던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새 노동당’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IMF한파로 기존의 경제발전모델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높아가면서 기든스가 주도하는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론이 주목을 끌고 있다. 성찰적 근대화론이 중시하는 가치는 개인의 창의성 존중, 개인과 사회의 신뢰회복을 바탕으로 한 조화, 사회세력간 합의를 바탕으로 한 발전 등으로, 지난 30여년간 우리가 추진해온 ‘돌진적 근대화(rush-to modernization)’-그 특징은 한마디로 ‘국가목표 조기 달성을 위한 가능한 자원의 총동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가 한계에 봉착한 시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굳이 기든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최근 우리사회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와 자본주의적 발전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난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개인의 창의성과 공동체생활, 개인의 이익과 사회공동의 이익, 민주주의이념(자유와 평등)과 공동체이념 상호간의 갈등과 조화를 어떻게 해결하고 상승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금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양자는 결코 분리되어서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순의 해결은 결국 그것을 만들고 주관하는 ‘사람’들의 자각에 달려있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풀어가야만 한다. 개인의 자발성, 창의성과 공동체생활의 모순은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남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통제할 수 있을 때만 대립,갈등을 극복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의식성을 갖고 있다. 고립된 개인으로는 생존이나 발전이 불가능하고 함께 더불어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는 속에서만 진정한 개인의 요구도 실현될 수 있다. 인간은 장기간에 걸친 역사적 과정을 통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왔고 이기심이 결국은 자기자신마저도 파괴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개인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개인경쟁을 위주로 한 끝없는 대립갈등의 세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고 통제할 때만이 더높은 단계의 공동체적 생활을 영위해갈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의 변화없이 사회제도의 변혁이나 국가권력을 동원한 강제적인 방법으로 실현하려 했을 때 오히려 개인경쟁체제만도 못한 결과를 낳거나 심지어 엄청난 반인간적 재앙을 몰고온다는 사실을 가까운 역사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목격했다.
진정으로 인간을 사회의 주인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공동체적 삶은 민주주의적 사회질서와 생활양식의 체화를 바탕으로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체적 의식으로 자각해갈 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사회구성원들이 남을 자신과 동등하게 인정하고 서로 억압하지 않는다는 자각(자유와 평등이념의 실현)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의 이익, 사회전체의 공동이익을 자신의 개인적 이익보다 앞세우는 인간사랑과 상호부조의 정신으로 자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IMF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사회곳곳에서 고통을 당하는 이웃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러한 위기를 맞게 되었는지 잘잘못을 엄중히 따져 문책을 함으로써 재발을 방지하고, 그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선 필요한 것은 고통받고 소외받는 내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 깊은 사회적 책임감과 연대의식을 갖는 것이다.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함께 느끼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 즉 시간과 노력을 이웃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면 그 고통은 훨씬 빨리 극복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것이 아까우면 ‘이웃’의 것도 아까운 법이다. 내가 먼저 ‘나’의 것을 아끼지 말고 기꺼이 ‘이웃’에게 준다면, ‘이웃’도 자신의 것을 또 다른 ‘이웃’에게 아낌없이 줄 것이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이웃사랑의 정신으로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 그 사회는 인간존중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길에 성큼 다가서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웃사랑의 정신, 인간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자원봉사이다. 자원봉사활동은 개인이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해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활동이다. 자원봉사는 그 어떤 외부의 강제적 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것은 오직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개인 스스로의 자각과 노력에 의해 다른사람들에 도움을 주고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원활동에 참여하는 각 개인은 인간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높히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다른 사람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킴으로서 공동체적 인간형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자원봉사활동이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저명한 사회학자인 솔로몬과 바우어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원봉사는 우선 마음의 평화, 자기존엄성, 지역사회 존중의 감정을 가져다 준다. 즉 동료인간들 사이에서 자신의 긍지 내지 위치를 확인하게 되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이를 통해서 자아를 발달시킬 수 있다. 자원봉사는 일을 성공적으로 처리한후에 얻는 성취감으로 부터 자신감과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자원봉사는 자기가 지역사회에 가치있는 존재가 되는 좋은 방법은 좋은 일을 베푸는데 대한 보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자원봉사는 인간이 무언가 가치있는 부분에 소속되고,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며, 사회에 의해 높히 평가받는 한 부분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내적요구를 충족시켜 준다. 자원봉사는 개인을 활동적이고 유용하게 그리고 성장하도록 유지시키며, 새로운 삶의 목적을 제시하기 때문에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건강을 가져온다. 자원봉사는 새로운 기술을 학습 할 수 있게 하고 이미 가진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다. 즉 새로운 사물과 일들에 대한 흥미가 발전되기 때문에 지적인 활동과 교육적 활동이 자극을 받아 지식의 확장을 가져 올수 있다. 자원봉사는 많은 레크레이션 가치들을 지니고 있다. 즉 개인적인 안정감을 증진시키면서도 권태․단조로움․외로움을 떨쳐버리게 한다. 자원봉사는 현재에 할 수 있는 많은 흥미있고 활력있는 일감을 제공하며 동시에 미래를 위한 많은 계획들과 프로그램들을 제시해 준다. 자원봉사는 개인의 올바른 판단력과 잠재적인 지도력을 개발해 준다. 자원봉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공적인 발언을 하거나, 남들과 타협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자신의 기지를 발휘하며, 논쟁을 벌이는 등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의 훈련기회를 제공한다. 자원봉사는 개인의 사교범위를 넓혀 많은 새롭고 유익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원봉사는 개인의 직책․직종․성별․연령 등에 따르는 인간관계의 전망을 발전시킨다.”
자원활동에 참여하는 개인은 활동과정을 통해 사회인식이 성장하고, 이타적 공동체 정신을 개발하며, 사회개혁을 끌어가는 진보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원봉사활동은 사회의 가장 큰 자원인 사람들을 개발, 성장시킬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 되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는 지역사회를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생활문화양식으로 변화시키고, 지역사회의 공적자원과 민간자원을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합시킴으로서 다양한 영역에서의 지역사회공동체건설의 기초를 형성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원봉사활동은 인도주의를 확산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정신을 실현함으로써 사회저변의 실질적 변화와 개혁을 선도한다는 점에서 인간존증의 공동체사회실현을 향한 21세기 시민사회성숙의 주요한 요소로 되고 있다.
자원봉사에 대한 많은 관심과 참여들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열린사회시민연합기획실장 박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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