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민운동
실직 홈리스 의료상담봉사
겨울바람을 뒤로한 채 종종걸음으로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늦은 밤 11시, 서울역 지하도에 한번 나가보았는가? 거기 종이판자 하나에 몸을 깔고 구부정한 자세로 주위의 시선에 아랑 곳 하지 않은 채 한뎃잠으로 긴 겨울밤을 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 이름하여 홈리스(Homeless)들이다.
홈리스 문제는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극심한 경제 고통의 다른 표현이다. 이들은 이혼, 별거, 독신 등 가족관계가 취약하거나, 오랜 사회적 소외, 불안정한 주거생활 등이 누적되다가 IMF 이후 대규모의 실직과 함께 짧은 시간내에 노숙에 이르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11월 중순 현재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약 4천1백여명의 홈리스들이 직장과 가정을 잃고 찬바람 부는 계절을 거리에서 맞이하고 있으며, 그 숫자는 당분간 더 늘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열린사회시민연합은 지난 10월 한달간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 서울역 지하도에서 홈리스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밀착 상담과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준비를 위한 현장답사차 처음 서울역 지하도에 나갔을 때 필자도 사실 강한 충격을 받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서울역 광장에는 수십여명의 노숙자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서소문공원 일대에는 그들이 임시로 쳐논 텐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서울역 지하도로 내려가니 그곳은 한마디로 노숙자 세상(?)이었다.
침낭과 담요를 준비한 노숙자도 보이고 라면상자만 바닥에 깔고 누운 노숙자도 있었다. 머리가 허연 노인네부터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느냐 씨름하는 젊은 아주머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거기 있었고, 그들 중에는 소주를 먹고 싸움판을 벌이거나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적선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윽고 모 선교회의 급식봉사를 알리는 찬송가소리가 울려퍼지자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꾸역구역 모여들기 시작한 그들의 숫자는 점차 늘어나 어림짐작만으로도 3백명은 넘어 보였다. 오로지 한 끼의 때늦은 저녁식사를 위해 남루한 옷차림과 퀘퀘한 냄새를 풍기며 길게 줄을 지어 낮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웅얼거리고 있는 사람들! 이것이 진정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민소득 1만불시대를 눈앞에 두고 OECD가입으로 선진국문턱에 들어섰다고 떠들어대던 이 나라의 수도 서울 중심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란 말인가? ......
우리는 즉각 자원봉사자 조직에 착수하였다. 각계에 호소문을 보내고 자원봉사자모집포스터를 부착하고 신문에 조각 광고도 내었다. 모금운동을 벌이고 사회경험이 많은 회원들로 상담원들을 선발하여 사전 교육을 실시하였다. 동대문지부의 이은영회원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의 간호사들로 자원봉사단을 구성하였고, 구로지부의 치과의사인 하충식회원은 무료치과진료를 자청해주었으며, ‘건치’ 소속 회원들도 자원봉사를 약속하였다. ‘건약’ 회원들은 간이약국을 운영하겠다고 나섰고,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 의사들은 각 대학병원별로 순번을 정해 내과 및 외과 무료진료를 맡아주기로 하였다. 더욱 반가운 일은 신문의 조각광고를 보고 몇번이나 망설이다 동료들과 함께 상의하여 전화를 주었다는 서울대병원 간호사들이었다. 포스터를 보고 전화를 했다며 자신은 특별히 가진 능력이 없으니 그냥 무슨 일이든지 시켜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노력봉사를 자청한 회사원이나 대학생들도 많았다.
우리의 활동은 노숙자들에게 당장 긴급한 의료구호활동을 중심으로 잠자리를 연결해주고 다시 일할 의지를 북돋아 줄 수 있도록 하는 상담활동을 결합하여 진행하였다. 필자가 맡고 있던 상담파트의 테이블 위에는 인쇄된 작은 메모쪽지 하나를 비치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서울역 근처에서 급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장소와 시간, 일자리나 신상에 관한 상담을 할 수 있는 상담기관의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어느날 치과진료를 하던 하충식회원이 그 쪽지 하나를 달라고 해서 아무생각없이 건네주었다. 다음날 치과진료테이블을 지나치다 보니 거기에도 똑같은 모양의 쪽지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내용을 언뜻보니 거기에는 하충식회원의 치과 전화번호와 약도 등이 적혀 있었다. “아니 하선생, 이 사람들 상대로 영업광고하세요?” 필자가 농담조로 물었다. “웬걸요? 이 분들 치아상태가 영 엉망입니다. 그대로 놔두면 그나마 얻어 먹는 밥들도 못먹게 됩니다. 우리치과가 좀 멀긴 하지만 여기서 임시처방하는 것 보다야 낳겠지요.”, “그렇게 자선사업만 하시다 이 IMF시대에 치과 문닫으시게요?”, “까짓것, 치과 문닫으면 나도 돗자리들고 아예 여기 서울역지하도로 옮기지요 뭐, 하하하.....” 하충식회원은 그렇게 사람좋은 얼굴로 웃는 것이었다.
활동 닷세째 날이던가 필자가 상담을 진행하고 있던 테이블 맍은 편 의자에 말쑥한 잠바차림의 40대 아저씨 한분이 앉았다. 아무리 보아도 노숙할 만한 분이 아닌 것같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순서대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지 등을 묻고 본론에 들어갔다. “노숙하신지 얼마나 되셨죠?”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 분은 겸연쩍은 얼굴로 “사실은 전 노숙자가 아니고요. 사람을 구하러 왔습니다. 건실한 사람 한사람만 소개시켜 주십시오”, “예? 사람은 소개받아 어디에 쓰시려고요?”, “제가 영등포에서 조그마한 마찌고바를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요. 어제밤 테레비젼에서 서울역노숙자들에 대한 프로를 보다가 이게 남의 일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밤새워 고민하다 아침에 출근한 공장사람들하고 같이 상의를 했죠. 회사형편도 어렵지만 우리가 조금씩 양보해서 일자리를 하나 나누어주면 되지 않느냐. 잠자리는 공장숙직실을 사용하면 될 것이고. 이렇게 결론을 본 것이지요.” 우리사회에 이런 분들이 계시는 한 이 어려운 IMF시대도 그리 멀지 않아 극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기간 중 작성된 상담기록부를 분석해보면 노숙기간이 1년 미만인 사람이 전체의 93.4%에 달해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최근의 IMF사태 이후에 발생한 노숙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직업별로 보면 건축일용 노동자가 전체의 40.9%에 달하고, 주방보조, 구두닦기, 행상인 등 불안정한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50%에 달하였다. ‘사장님’소리를 들으며 소규모 공장제조업이나 영세 하청업을 운영하던 사람도 5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이들 실직자들의 노숙이 3개월정도 지속되면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노숙 자체에 익숙해져 가며, 6개월 정도면 기존의 부랑인들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피폐화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진료를 받은 환자들 중에는 감기, 폐결핵 등 호흡기 질환환자가 185명(30.7%)으로 가장 많았고, 불규칙한 식사와 음주 등으로 인한 소화성궤양, 기능성 위장장애 등 소화기 질환환자가 93명(15.4%), 오랜기간 노숙 등으로 인한 염좌, 관절통 기타 정형외과 질환환자도 144명(23.9%)으로 나타났다. 외상환자의 경우 45명(7.5%)을 차지하였으며, 피부질환 환자도 39명(6.5%)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상당수의 홈리스들이 부적합한 위생환경에서 생활하는 데 따른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 고혈압, 부정맥, 당뇨, 간경화, 간질, 심장질환 등 지속적인 치료를 요하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더우기, 폐결핵 등 전염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홈리스들의 경우 적절한 치료가 이워지지 않아 급속히 환자수가 늘어날 위험이 크며, 전염성 질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할동기간 중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함께 ‘노숙자 건강실태 조사를 위한 설문’ 인터뷰도 전개하였다. 이 설문인터뷰는 진료기록부 및 상담기록부와 함께 심층분석, 통계처리되어 홈리스의 실태를 연구하고 대책을 세우는 데 소중한 자료로 쓰여질 예정이다. 추운 겨울이 닥치면서 홈리스들의 건강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어 공공의료기관의 적극적인 대책히 요구되어 진다. 장애인․병약자․고령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도 절실하다. 실제로 거동하기 조차 힘든 노숙자, 만성질병으로 인해 노동력이 상실된 노숙자, 장기입원이 필요함에도 돈이 없어 입원수속을 받기 어려운 노숙자, 상처가 깊게나서 당장 응급치료조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노숙자들이 예상외로 많이 나타났다.
홈리스들의 대부분은 정부의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된 취약계층이다. 급작스런 경제난과 불안정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순식간에 노숙을 선택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의 따뜻한 관심이 아쉽다. 지금 종교계나 사회복지기관 등에서 적극나서 ‘희망의 집’ 입소를 유도하고 홈리스들에게 자활의지를 되찾아주기 위해 각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홈리스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어려운점이 한둘이 아니다. 홈리스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적대감, 장기적인 홈리스대책을 위한 예산의 부족, 홈리스 자활 프로그램의 개발 등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음이 현실이다. 올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이 되면 더욱 많은 홈리스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홈리스 문제는 고통스럽더라도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우리사회가 함께 부둥켜안고 갈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노숙자들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한 정책적․사회적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집을 잃은 자(Homeless)가 희망을 잃은 자(Hopeless)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그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