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5일 목요일

꽃제비와 인도주의(1998.12/세계일보)

꽃제비와 인도주의


열린사회시민연합 기획실장 박홍순

어떤 나라가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판별하는 척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국민소득이 얼마나 되느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냐, 인공위성을 쏘아올릴만한 기술력이 있느냐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척도는 그 사회가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 안 여기느냐를 놓고 선진 ․후진을 가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얼마전 KBS에 방영된 북녘 어린이들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맨발로 질퍽거리는 장마당을 헤매며 국수가락을 주어먹는 아이, 빨간 컵을 손에 쥔채 시궁창물에서 원가 먹을 것을 찾고 있는 열삭박이 소녀, 앙상한 두 손을 모은채 홑겹 보자기를 어깨에 두른 소년의 모습은 너무도 깊은 충격을 주었다. 이름하여 ‘꽃제비’라고 한다던가! ‘사회주의의 꽃’이어야 할 어린이들이 ‘꽃제비’로 전락한 20세기 최후의 비극이 우리 북녘땅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북한 통치자들은 민생에 눈을 돌리지 않고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강성대국을 부르짖으며 허장성세하고 있다. 무모하게 간첩선을 남쪽에 보내고 지하군사시설을 건설하는 그 비용만 아껴도 당장 아이들의 허기를 조금은 면할 수 있을텐데 치밀어오르는 인간적 분노를 참을 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이고 무엇을 위한 군사대국인가? 헐벗고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초보적인 인권이다. 이것조차 해결할 수 없다면 그 어떤 이념이나 정치논리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북한통치자들이 스스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없다면 솔직히 드러내놓고 국제사회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해야만 한다. 그 길만이 주민들을 구하고 자신들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고립과 폐쇄는 ‘자주’가 아니라 ‘자멸’의 길이다.

북녘아이들의 참혹한 모습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 하늘을 지고 살고 있고 한 핏줄을 이어온 우리가 그들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보내주는 식량이 군수용으로 둔갑할 지도 모르고 북한당국자들이 우리정부와의 접촉을 거부하고 있는 조건에서 그것은 너무 감상적인 것 아니냐고 힐난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정말 이대로 간다면 우리 민족의 한 세대가 공백상태에 들어 갈 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 후세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공식적인 통로가 어렵다면 비공식으로라도 반드시 길을 찾아야만 한다. 국제기관이나 종교단체, 시민단체 등 민간차원의 활동이 보다 활발해져야 한다. 진정한 인간애의 발휘는 밑으로부터 서서히 사람들을 움직이고 새로운 사회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 될 것이다. 북한주민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지원은 북한사회의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성숙을 위해서도 진정으로 필요하다. 인도주의와 동포애에 기반한 실천, 그것이 우리사회가 인간을 무엇보다 귀중하게 생각하는 선진사회로 가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다시 고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은 IMF 통화관리체제를 극복하고 다시 도약하려는 우리 경제나, 민주개혁에 가속도를 붙이려는 우리 사회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당장의 그런 부담 때문만이 아니라 진정 전쟁의 참화를 방지하고 반세기의 대립과 갈등을 끝내려면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구조의 조정에서뿐만 아니라 통일문제의 해결에서도 빅딜이 필요하다. 이제 21세기가 머지 않았다.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인간성이 꽃피는 화해와 협력의 세기로 맞이하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