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이 나아갈 길
열린사회시민연합 박홍순
시민운동의 역할과 관련하여 발제문은 권력의 견제, 시민이익의 옹호라는 전통적 역할로부터 제3부문의 창출, 사회교육,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최근에 강조되는 역할까지 잘 정리하였다. 시민운동의 나아갈 길이라는 토론주제에 비추어 아무래도 최근의 흐름을 중심으로 토론하는 것이 생산적이라 생각한다.
87년을 깃점으로 우리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7, 80년대의 독재권력에 대한 저항운동은 한편으로는 계급계층별 대중운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운동으로 성장발전하였다. 전자는 민주노총, 전농 등으로 대표되고 후자는 경실련, 환경연합, 참여연대 등으로 대표될 수 있다. 90년대 후반들어서는 사회 전분야에 걸쳐 그 양상이 보다 다양화되고 세분화되었다, 그런데 87년 이후의 여러 운동들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심화발전이라는 방향에서 시민들의 권익을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확대,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런데 비판과 견제, 그리고 정책대안의 제출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보다 근본적인 방향에서 총체적으로 사회의 운영원리와 발전방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시민운동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21세기 우리사회에서 제3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질 것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되는 제1섹터나 시장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제2섹터와 달리 제3섹터는 자원성에 입각한 시민들의 참여와 비영리적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 때문에 제3섹터에 근거하여 전개되는 시민운동은 대립과 경쟁, 투쟁의 원리보다는 상생과 조화, 참여의 원리들에 입각하여 운동의 동력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
20세기의 진보운동은 모순의 대립과 투쟁의 원리에 입각하여 세상을 해석하고 실천하였다. 그것은 전근대적인 억압과 굴종에서 해방되어 자아를 찾고 각성된 개인들간의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향해 즉,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움직인 장엄한 역사였다. 그 성과를 딛고 21세기에는 더 나아간 인류의 비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개인과 공동체와의 조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비젼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보다 깊은 성찰과 성숙을 전제로 한다. ‘나’와 다른 ‘너’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함께 해야 할 ‘우리’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책임이 없이는 인류공동체의 새로운 비젼에 한발자욱도 다가갈 수 없다. 때문에 사회교육에 대한 시민운동의 역할, 공동체 형성에 대한 시민운동의 역할은 보다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이제 시민운동은 네가티브한 운동에서 포지티브한 운동으로 수동적인 역할에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역할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개혁적 방식에서 생활실천적 방식으로, 제도의 개혁을 넘어 사람들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민사회를 정치권력과의 관계에서 대립적 위치로 고정시켜 놓고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시민사회는 정치권력이 탄생하는 모태이며 시민 한사람 한사람은 정치권력에 대한 주권자이고 그 담보자이다. 때문에 시민사회는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해 바르게 성장토록 애정과 책임을 가지고 돌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발제문이 시민운동의 본질을 정치권력, 경제권력 등과 구분하여 사회권력, 문화권력으로 표현하는 것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를 사회권력, 문화권력을 추구하는 기관으로 상정하는 것은 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왜냐하면 사회문화영역은 정치영역과는 달리 그 구성원리나 운영원리가 권력관계를 기본으로 하지 않고 구성원 상호간의 조화와 협동을 보다 중요한 원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회문화운동에서는 누가 누구를 지배, 관리하는 권력적 개념보다는 교육하고 상호협력하는 지도,지원의 개념이 보다 바람직할 듯 싶다. 최근 시민운동을 언론에 이어 제5의 권부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발제문에서도 표현하고 있듯이 시민운동의 본질을 문화혁명(개혁)이라고 개념짓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현재의 시민운동만 놓고 보면 과한 얘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우리 인류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본다면 그러한 사명감을 갖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운동가의 특성을 헌신적인 교사, 종교인 등과 비교해 볼 수도 있겠다. 물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생활인으로 직업인으로서 자기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전문가로서의 소질을,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활동가들의 전문성을 높히는 것, 행정능력, 정책능력 등등을 개발하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고 또 시민운도에 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시민없는 시민운동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운동의 주인인 ‘시민’의 활동과 역할이 주어지지 않고 개발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본래 법조인은 법정과 법률을 통해서, 학자는 강단과 학회를 통해서 발언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풍토는 그동안 그렇지 못했다. 제대로 된 정당과 정치활동공간이 없고 과거의 폐쇄적 분위기가 사회 각 분야에서 아직 맹위를 떨치고 있는 조건에서 빼꼼히 열려진 시민단체의 문으로 봇물처럼 터져나온 것으로 이해하자. 전문가들의 시민의 일원으로 당연히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문제삼는 것은 전문적 정책대안의 제시와 그의 언론을 통한 사회여론화,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에 치중하다 보니까 정작 본연의 임무인 다수 일반시민들의 참여와 활동을 조직하고 교육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생활실천적인 운동,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잇슈의 개발과 실천프로그램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지역사회에서의 풀뿌리운동이 강조되고 있다. 시민운동의 발전방향과 관련하여 지역을 거론할 때 그것은 단순히 지리적 개념을 의미하거나 중앙과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지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지구화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하는 지역을 의미하고 근대적 자각과 발전에 토대한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서의 지역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다.
21세기 시민운동은 사회발전에 분명한 전망을 주고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양식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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