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6일 금요일

마을만들기와 주민자치센터 활성화(2000.11/춘천)

마을만들기와 주민자치센터 활성화

박 홍순


  읍․면․동사무소의 기능전환에 따른 주민자치센터의 설립과 운영이 11월부터 도시지역 1,655개 동에서 전면 실시된다. 도농복합지역과 농촌지역에서는 올 하반기에 시범실시에 들어가 내년 하반기에는 전면 실시될 예정이다. 애당초 계획대로 읍․면․동의 최하행정계층을 아직 폐지하지 않았고, 제반 여건의 미비로 일부지역의 기능전환이 연기되는 등 차질을 빚고 있지만 읍․면․동지역에서의 주민자치센터의 설립과 운영은 우리 나라 지방자치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공동체적 변화를 위한 의미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시범실시되고 있는 주민자치센터의 현황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대다수의 주민자치센터가 천편일률적인 시설, 공간 배치를 하고 있으며 취미, 교양류의 비슷한 프로그램을 나열식으로 운영하고 있어 주변의 유사한 사설기관과 중복되고 질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주민자치센터 운영의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할 대다수 주민자치위원이 과거 행정보조적 기능을 하던 단체의 임원이나 정치적 성향을 갖는 지역유지들로 구성되어 지역주민의 대표성을 구현하지 못하고 지역사회봉사자로서의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며 주민자치위원회의 권한이 동장의 자문기구로 한정됨으로 해서 주민자치센터 운영 전반에 대한 책임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 점이 큰 문제점이 되고 있다. 그 밖에 일선 공무원과 자치단체의 소극성과 행정구조개편에 대한 저항, 자원봉사자 확보의 어려움, 재원확보의 어려움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주민자치센터 설립의 본래 취지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이제까지의 관행과 행정적 편의에 의해 사업이 추진되거나 개혁을 밀고 나갈 주체를 뚜렷이 형성하지 못한 결과이다. 지금이라도 문제점을 올바른 관점에서 진단, 분석하고 개선보완책을 마련하여 장기적 관점 하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특히 초기단계에서 첫단추를 잘 꿰야만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효율적인 사업추진이 가능한 만큼 민간이나 행정 양측이 모두 각별한 관심을 갖고 협력하여 올바른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주민자치센터의 성격과 목적에 대해 잘 이해하여야 한다.

  주민자치센터의 기본성격은 행정의 연장선에 있는 서비스기관이 아니라 지역공동체활성화를 위해 지역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자치기관을 지향하여야 한다. 또 점차 제3섹터적 성격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3섹터 조직들의 일반적 특성인 민간적(private)이고 비영리적(non-profit)이고 자원적(voluntary)이며 자치적(self-governing)인 성격을 구현할 때만이 주민자치센터로서의 자기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민자치센터의 목적은 주민을 위한 문화, 복지, 편익시설과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해 주민자치의식과 공동체의식을 향상시키는 구심체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다. 이러한 점은 행정자치부의 ‘주민자치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 준칙’에서도 그 목적을 “주민편의 및 복리증진을 도모하고 주민자치기능을 강화하여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하여 ...”라고 규정하여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주민자치는 말 그대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을 스스로 운영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고도로 복잡화되고 광역단위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이 연관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문제를 주민의 직접적 자치에 의해 해결할 수는 없으며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위임하여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적어도 동단위와 같이 기초자치단체 이하의 보다 직접적인 생활단위에서는 주민들이 지역의 여러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또 스스로 지역사회의 활동에 참여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따라서 주민자치라고 하는 것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지역사회활동에의 참여를 전제로 한 것이며, 이러한 참여에 대해 지역사회에 권한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주민자치의 기능을 강화한다고 하는 것은 주민들이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그 계기를 만들어 주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자신들의 이해에만 머물러 있는 주민들을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의식의 변화를 지향해야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주민자치와 공동체는 완벽하게 규정된 어떤 형태를 갖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의 성숙도에 따라 그 형태와 정도가 결정될 수 있다. 즉, 주민자치는 계속되는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주민자치센터는 그러한 주민자치력과 공동체 의식을 훈련하는 장(場)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주민자치센터는 단순히 주민편의시설을 설치하여 개방하거나 몇 가지 취미, 교양프로그램을 개설, 운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해야만 궁극적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지방행정개혁에 따른 공무원의 구조조정과 동사무소 행정기능의 기초자치단체 이관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 추진이라는 공공개혁과제에 부합하는 것이고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혁은 일방적 선언과 지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설득과 홍보, 교육 그리고 무엇보다도 빈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와 대안에 대한 준비와 육성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구조조정과 기능전환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일뿐 그것이 개혁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때문에 민간자율에 의한 주민자치센터의 설립과 운영은 성공적인 동사무소 기능전환을 위한 전제이자 바로미터인 것이다.


시민운동의 마인드전환이 필요하다.

  주민자치센터의 설립과 운영은 바람직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전형적인 민․관파트너십 형성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제까지 행정에서의 민․관협력 모델은 관(官)이 주도하고 민(民)은 그에 협조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민이 주도해야 할 것과 관이 주도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 민이 주도해야 할 것은 관이 할 수 없는 것들로 주민자치센터의 본래 기능인 주민자치력의 향상과 지역공동체의 형성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주민자치센터를 활성화하기 위한 민․관협력모델은 주민들의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한 활동(software)을 민이 담당하고 관은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행정적, 재정적, 시설적 지원(hardware)을 담당하는 모델이고 이러한 모델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민․관파트너십의 전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민․관파트너십의 형성을 위해서는 관의 태도변화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민(民) 스스로가 먼저 마인드를 변화키고 새로운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민간시민운동이 그동안 여러 개혁사안에 대해 취해온 태도는 다분히 네가티브(negative)한 것이었다. 즉 비판과 견제를 주요한 목적으로 행정을 감시하고 고발하며 개선책을 촉구하고 것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주민자치센터의 문제는 그러한 관점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주민자치센터는 그 자체의 성격과 목적이 민의 직접적 참여와 운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성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문제이다. 또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라고 하는 미래지향적인 목적을 스스로 건설, 창조해 나가는 포지티브(positive)한 성격의 사안인 것이다.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는 민간시민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살아왔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은 희생되어야 한다고 배워왔고 당위에서 출발하여 현실을 해석해왔다. 하지만 이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함께 연결되어 있고 구체적 삶 속에서 이상은 하나씩 실현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나의 삶터에서, 가족과 이웃과 지역사회를 돌보고 함께 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운동의 전망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는 이제 국가나 민족 같은 더 큰 것을 위한 부속품이 아니다. 지역사회에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 있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문화가 있으며 세계와 함께 호흡하는 현실사회의 발전이 있다.
  주민자치센터를 매개로 생활권 단위에서의 주민과 밀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주민들의 자치적인 모임을 조직하며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로 연결하는 운동을 향후 주요한 풀뿌리시민운동의 사업방향으로 잡아나가야 한다. 주민자치센터는 ‘시설’의 개념이다. 이제까지의 행정사무소기능에서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회의하고 모임하는 자치방이나 교육실, 정보센터, 문화의 집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주민자치센터가 하나의 그릇이라고 할 때 그 그릇에 담길 새로운 내용을 채우고 그 내용-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공동체적 생활문화와 의식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풀뿌리시민단체의 역할이다. 풀뿌리시민단체들이 그동안 주민들과 함께해 온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 즉 동네하천 생태기행, 마을축제, 방과후 학교, 지역화폐, 각종 강습과 교육 등등 이 모든 것이 주민자치센터라고 하는 그릇을 채울 가장 적절한 내용인 것이다.
  주민자치센터의 참여와 지역공동체활성화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생적 주민리더십의 발굴과 육성이다. 주민자치센터는 말그대로 ‘동민의 집’이고 주민 모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 속에서 리더십이 나오고 그 리더십에 의해 끊임없이 확대재생산이 되는 구조로 가야한다. 풀뿌리시민단체는 여기서 지원자가 되고 촉진자가 되어야 하지 그 수혜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같은 맥락에서 협소한 단체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주민자치센터의 운영을 둘러싸고 경쟁하거나 자신의 성과물로 축적하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사심없이 봉사하고 지역사회내의 각종 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여러 민간기관들, 학교, 도서관, 종교기관, 복지기관, 언론사, 상공업기관들과 협력관계를 만들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와의 올바른 파트너십을 형성하기 위한 창조적인 지혜가 요구된다.


주민자치센터 운영에서 마을만들기 방식을 결합하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지역주민운동진영에서 많이 시도하고 있는 운동방식이 마을만들기이다. 이 방식을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운영에 적용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 마을만들기는 일본의 마찌즈쿠리(まちつくり)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놀이터, 공원, 하수처리장 등 공공시설의 건축과 유지관리와 관련하여 지방행정의 발상을 전환하여 그 과정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마을의 제 집단을 참여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중시하는 것은 얼마나 값비싸고 좋은 시설을 설치하느냐가 아니라 그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애정을 갖고 참여하느냐하는 점이다. 주민자치센터의 운영에서도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 환경, 교통, 교육, 복지, 범죄, 재난관리, 시설유지 등 지역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주민 스스로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참여하여 해결하는 주체로 되도록 하는 것이고 행정은 이러한 과정을 안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열린사회’에서는 올해 ‘삶터가꾸기’라는 이름으로 이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터가꾸기 운동의 몇 가지 원칙을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삶터가꾸기 운동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해야 한다. 마스터 플랜이 있으면 더욱 좋고, 전체적인 상을 확보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민주화운동할 때처럼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이 삶터는 단계적으로 이렇게 가꾸어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은 있어야 하며, 점차 이 상상을 공유해 가야 한다.
  둘째, 초기에 시민단체나 관이 기획하거나 주도하더라도 과정에서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이후 자연스럽게 주민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래야만 첫째에서 언급한 장기성을 담보할 수 있으며, 다른 여러 가지 과제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관이나 단체에서 이 사업을 담당한 사람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중단하거나 기타의 사정으로 약화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셋째,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주민들의 요구가 높고, 해결가능성이 있는 소재를 잘 선택해야  한다. 이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 요구가 높으면 참여도 높고, 참여가 자연스러우면 주민모임으로의 발전이 원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요구가 높다고 해결가능성이 없는 소재를 설정하게 되면 단체일꾼이 매우 고생하게 되며, 점점 주민들의 참여도 떨어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 지역에서 어느 정도 모형을 만들고 옆으로 확산해 갈 때까지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넷째, 관과 기존 주민조직과 함께 해야 하고 이들의 역할에 대해 사업 기획부터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특히 관은 삶터를 가꾸자면 어차피 최소한의 하드웨어가 필요하고 이는 비용을 수반하는 문제여서 자치단체의 협력없이는 매우 어렵다. 또한 기존 주민조직(새마을 부녀회나 체육회, 상가회 등 등)들도 삶터가꾸기 운동의 중요한 동반자가 될 수 있으며, 이 역량을 잘 고려해야 한다.
  다섯째, 주민들이 보람을 느끼고, 무리하지 않도록 진행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계속 확장시켜 가는 내용이거나 일감이어서는 안된다.
  여섯째, 주민이 주민과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일을 하다보면 분명 좋은 일인데도 싫다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러냐고 정중하게 물어봐도 하여간 싫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삶터가꾸기라는 예쁜 운동도 이 특이함에서 예외는 아니며,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시민단체나 관이 직접 나서기 보다 주민들이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주민자치센터의 궁극적 목적은 곧 지역공동체의 활성화이다. 주민자치는 지역공동체내의 여러 문제에 대해 주민 스스로가 직접 참여하여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주민자치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개인의 이해와 권리주장을 넘어서 공동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게되고 공공선의 추구와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주민자치센터가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그 공간을 채울 가장 적절한 프로그램은 마을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프로그램의 수행과정에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이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마을만들기와 같은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동사무소라는 제한된 시설공간을 넘어서 마을공동체 전체로 시야를 확대하고 지역사회의 여러 자원을 연결하여 네트워킹하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센터’로서 자기 역할을 할 때만 주민자치센터는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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