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0일 화요일

주민자치센터읍면지역추진관련토론회(2001.3)


토 론 문

박홍순(열린사회시민연합 사무처장)

주민자치센터의 설치와 운영은 주민들의 직접 참여와 자치를 통해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또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사회저변에 개인주의를 넘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의식과 공동체의식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많은 풀뿌리시민단체들은 행정기능의 전환과 주민자치센터의 설치에 대해 매우 바람직한 일로 환영하고, 그 활성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 가고 있다. 지난 해 결성된 “주민자치센터 활성화를 위한 풀뿌리네트워크”는 전국의 112개 풀뿌리시민단체들과 관심있는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고, 일부 도시지역의 자치센터에는 시민단체들이 프로그램위탁이나 자치위원 참여를 통해 주민참여형 자치센터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도시지역과 달리 읍면지역의 기능전환과 자치센터 설치는 농어촌 주민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조건과 행정여건의 차이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주제발표자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농촌지역의 특성상 원거리로 인한 현장민원의 신속한 처리와 재해발생시의 신속한 대처가 지연될 수 있으며, 인적 자원의 부족과 NGO의 미발달, 예산의 부족 등의 이유로 시설설치와 자치센터운영이 형식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도시지역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이지만 주민자치위원 구성이 관변인사나 정치적 성향의 인사들도 채워져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시설과 프로그램 운용이 천편일률적이고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은 농촌지역의 경우 더욱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읍면지역의 주민자치센터 설치 및 바람직한 운영방향에 대한 주제발표자의 의견에 대체적으로 공감한다. 그 중에서도 토론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을 현지방문과 의견수렴을 통해 얻은 결론을 토대로 다음 몇 가지로 제기하고자 한다.

총론과 방향은 옳지만 시행방법은 구태의연하다.

주민자치센터의 설치와 운영을 통해 주민자치와 커뮤니티를 활성화한다는 기본방향은 옳고 시의적절한 것이지만, 기능을 전환해나가는 행정당국의 추진방법은 행정편의적이고 중앙집권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시범지역 자치센터들이 중앙행정부의 일반적 지침에 따른 천편일률적 시설배치와 프로그램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토론자가 방문한 자치센터의 경우에도 민원인 휴게시설, 인터넷 검색대, 어린이 놀이방, 다목적실, 탁구장, 주민회의실 등 예시안에 따라 시설설치가 완료되어 있었다. 하지만 목적성을 상실하고 실용성을 고려하지 않은 형식적 시설설치(예 : ‘다목적실의 카페트와 붙박이 의자, 이용객이 없는 인터넷검색대와 놀이방, 읍장실과 겸용으로 쓰는 주민회의실)는 전시성에 그치고 오히려 예산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농촌지역에서의 문화여가, 복지기능 위주의 프로그램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도시지역과 달리 농촌지역은 문화여가서비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활경제 활성화가 더 절박하다. 영농 및 농산물 판매관련정보, 농한기 활용방법, 노인건강과 복지 프로그램 등이 중요하다. 읍단위 등 상대적으로 도시화된 지역의 경우에도 문화여가시설과 프로그램을 이용할 만한 주민층은 프로그램 질의 비교우위상 차라리 인접 도시지역의 문화복지시설과 사설기관을 이용하는 실정이다.

또 지역내 교육, 문화, 복지 등 여러 공공시설과 기관들간의 연계체계 구축을 통한 지역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네트워크 형성이 될 때 자치센터와 지역공동체활성화의 본 취지를 살릴 수 있음에도 이러한 방면에는 전혀 인식과 노력이 뒤따르지 않고 다만 주어진 읍면사무소의 공간내에서의 시설배치와 프로그램운영에만 매달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행정의 자율성이 극히 낮아 현장실정에 근거한 융통성있는 업무기획과 집행이 안되고 있는 사정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동사무소에 인접한 복지회관의 시설위탁과 운영에 관한 권한이 군청에 있어 주민자치센터와는 전혀 연계성없이 별도로 운영되는 현실을 들 수 있다.

담당공무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고 형식적 지침수행에 머무르는 현재의 문제점은 실적보고 중심의 행정문화가 낳은 폐단이기도 하다. 기능전환이 추진된 읍면동지역에서도 실질적 행정업무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조사통계 업무보고 등 상급행정부서의 업무협조요청 등으로 많은 행정실무력이 소진되고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고, 주민자치센터관련 업무만을 맡는 전담공무원이 없고 부가적 업무로 취급받는 것이 현실이다.

소를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이지는 못한다.

주민자치와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주민자치센터의 설치와 운영은 우리사회발전의 장기적 비젼을 개척하는 것이고 시민사회 전반의 생활문화를 개혁하는 운동적 성격의 문제이다. 행정기능전환과 시설재배치와 같은 단기간의 행정적 조치로만 될 일이 아니고 주민자치역량의 육성과 풀뿌리시민단체에 대한 지원 등 정치적 판단과 사회운동적 흐름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장기적 관점에서 ‘시설’이 아니라 ‘사람’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토론자가 만난 농촌지역의 담당공무원은 이를 한마디로 “우리지역에는 NGO가 없다”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국민의 정부’ 초기부터 제2건국위원회가 각 읍면지역에 이르기까지 조직되었지만 실제 살아 움직이는 조직은 거의 없다. 관련 공무원들에 의한 형식적 활동보고가 있을 뿐이다. 읍면사무소의 인력이 축소되고 행정기능이 재편되면 “산불은 누가 끄나? 눈은 누가 치우나? 공공시설의 보수와 관리는 누가 하나?”라는 일선 공무원의 항변은 나름대로 이유있는 것이다. 읍면지역에서는 새마을부녀회 정도가 거의 유일한 자원봉사자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자치센터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의 주민지도자 양성이 필수적이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지역 유지들의 친목모임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선거철에 정치바람에 휘둘리게 된다면 더 이상 전망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기존 지역개발위원이나 관변인사에만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을 발굴하고 역할을 주어 성장시켜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정’이다. 자율적인 운영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더 나은 민주주의로 훈련되는 것이다. 주민자치위원회의 구성을 과감히 개방하자. 지역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민추천과 직접선출을 시도해보자. 연령, 직업별 배정비율을 정해볼 수도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역할도 확실하게 밀어주자. 단순 심의자문기구는 자치형의 지도자를 배출할 수 없다. 직접 센터운영주체가 되어 책임지고 일하게 해야 한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소모임, 동아리를 만들고 그들의 대표를 센터운영위원으로 참여시키자.

센터가 활성화되려면 전담실무자 양성이 필수적이다. 현재의 주민자치센터업무는 담당공무원의 부가업무일 뿐이다. 전담실무자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주민을 조직하는 능력이다. 기존 행정공무원의 마인드만 가지고는 어렵다. 별정직 등으로 전문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그에 따른 예산이 지원되어야 한다. 기존 공무원 중에 관련 전문성이 있는 인력을 재훈련 과정을 통해 배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농촌지역에서의 주민자치센터 운영은 기존 읍면사무소 공간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 자연부락단위(혹은 리단위)의 마을회관을 활용하고 ‘대동회’ 등 전통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주민자치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읍면사무소에 문화, 복지 관련 시설을 설치하거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매몰되지 말고, 주민자치기능을 발굴하고 연결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시설비 위주의 국비지원을 지양해야한다. 오히려 주민자치역량을 활성화하고, 주민소모임, 자원봉사그룹, 풀뿌리시민단체의 육성에 주력하고 그를 지원하는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가 낮은 현 실정에서는 과감한 국가예산의 투입이 필요하다. 지방교부금 속에 포함된 운영비지원은 실효성이 없다. 주민자치센터 활성화를 위한 별도의 예산항목이 신설되어야 한다. 전국적으로 일률적인 기능전환과 ‘작은 재원 쪼개서 나눠주기’를 하지말고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서 모델을 세우고 확산하는 방식으로 해야 효과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제발표자가 제기한 일정기간을 정해 희망자치단체부터 융통성있게 실시하자는 방법론을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

전 사회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자원봉사 지원법’을 조속히 제정하여 자원봉사에 대한 지원, 인정, 보상과 같은 자원봉사 활성화 기반을 제도화하고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중앙정부나 중앙매스컴의 홍보나 보도, 캠페인 등을 적극화해야 한다.

주민자치센터의 설치와 운영은 수십년에 걸친 장기적 플랜이란 생각을 갖고 분명한 목적의식과 지속성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기반조성을 충실히 해나가야 하며, 모델을 세워 확산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행정시스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치센터를 담당해나갈 사람-주체형성과 주민자치기능의 활성화를 위한 각별한 노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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