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시민운동과 주민참여
박홍순(열린사회시민연합 사무처장)
1. 풀뿌리시민운동의 두 가지 형태
지역사회에서의 시민운동은 보통 두 가지 형태의 서로 다른 역할을 갖는 운동이 중첩되어 전개되는 양상을 띤다. 하나는 지역주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로 주로 당면한 잇슈를 제기하여 지방정부나 기업을 비판, 견제하는 운동의 형태를 띠게 된다. 또 하나는 지역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공동체를 형성, 발전시키게끔 촉진하는 역할로 이 경우에는 잇슈의 해결 그 자체보다는 주민들의 참여와 조직화, 그리고 의식의 변화과정을 보다 중시하게 된다.
전자는 한국의 전통적인 시민운동 역할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역할은 단기간의 효과적인 문제해결을 추구하기 때문에 여론의 효율적 활용과 전문가들의 결합을 주로 선호하게 된다. 따라서 문제해결과정에 주민들을 주체로 세우려는 노력이 소홀하게 되고 주민참여가 있는 경우에도 종종 압력행사를 위한 동원적 성격을 띠게 된다. 한국의 시민운동이 많이 성장하였다고는 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의 경우 이와 같은 운동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의 경우에도 이러한 범주의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많다. 하지만 이 역할은 우리 사회의 행정과 정치의 부정적인 부분을 파고드는 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그 부정적인 부분이 사라질수록 한계가 드러날 수 있는 전략이다.
후자의 경우는 주민참여가 보다 강조된다. 방법이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주민참여 그 자체가 중시되며,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과 이웃, 지역의 문제를 찾아내고 그 해결의 과정에 참여케 하며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의식변화와 관계변화를 추구하도록 한다. 이 역할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꾸준한 운동과정을 통해 주민들을 지역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조직하려고 한다. 이러한 역할을 강조하는 풀뿌리운동단체들은 정치, 경제적인 현안문제들 보다는 오히려 교육, 복지, 환경, 보건 등 생활상의 문제를 매개로 지역사회공동체의 새로운 사회문화형성을 위해 노력하며, 그러한 사회변화를 이끄는 궁극적 힘을 주체인 지역주민들의 변화, 성장에서 찾으려 한다. 따라서 이러한 운동은 이 사회를 보다 밑에서부터 바꾸어 나가는 근원적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필자가 일하는 열린사회시민연합에서는 후자를 일반적인 한국사회 시민운동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구분하고 그 성격과 지향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풀뿌리공동체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정의하고 있다. 풀뿌리공동체운동에서 ‘풀뿌리’는 민초(民草), 즉 생활 속의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라는 의미와 지역사회의 일상적 생활기반이라는 의미, 양자를 모두 포괄하며 운동의 주체와 기반, 영역을 나타내 준다. ‘공동체’는 운동의 지향과 목표를 나타내는 것으로 개인의 자율성에 기초하여 사회적 공동선을 실현하는 새로운 사회구성을 형성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이러한 배경에는 사회발전에서 법, 제도의 개혁이나 정치권력을 통한 파워의 행사보다도 사람들의 의식과 능력을 발전시키는 문제가 보다 근본적인 과제이며, 개인주의나 집단주의를 넘어서서 사람 개개인의 의식과 생활양식의 발전을 토대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공동체적 관계발전에 사회발전의 핵심이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역사회에서의 시민운동에 있어 주민의 참여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고 그 특징은 어떤 것인지를 풀뿌리공동체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 정리하고 주민참여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고 이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조건들은 무엇인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단 이 글은 전문 연구자의 글이 아니고 현장 활동가의 경험과 토론을 바탕으로 정리한 글이기에 다소 산만하고 논리적 비약이나 학문적 검증이 부족한 점이 있다는 점을 미리 전제해두고자 한다.
2. 주민참여형 풀뿌리시민운동의 특징
(1)
풀뿌리시민단체들의 대표적인 활동 중의 하나가 주민자치와 관련된 활동일 것이다. 90년대 이후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의 명칭 또는 규약 등을 보면 “참여”와 “자치” 또는 “공동체”라는 용어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부분의 풀뿌리시민단체들이 자신의 사명과 활동의 목적을 무엇에 두고 있는지를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7,80년대의 권위주의적 국가체제에 대항하여 격렬한 민주화운동을 벌여온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의 시민운동은 90년대 들어와 지역사회의 민주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지방자치제도의 부활은 이러한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을 활성화시키는 외적 조건으로 작용하였고 과거로부터 잔존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여러 병폐에 맞서 그를 고발하고 시정하기 위한 운동들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또 높아진 주민들의 권리의식들과 맞물려 이러한 지역차원의 시민운동에 대한 일반주민들의 참여도 증대하였다.
하지만 “참여”와 “자치”도 그를 수행하는 주체들의 의식수준과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내용을 달리 할 수 있다. 초기단계에서의 “참여”와 “자치”는 권리찾기 수준의 활동을 의미하였다. 지금도 많은 자생적 주민운동들은 이러한 성격을 띠고 전개되고 있다. ‘안면도 핵폐기장 건립 반대운동’, ‘제주 탑동 매립지 반대운동’, ‘순천 시내버스 요금 인상 반대운동’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역주민운동들이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지역시민단체들이 개입, 지원하는 경우도 많았고 운동의 결과로 시민단체들이 결성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큰 규모의 주민운동보다는 아파트관리비 문제 등 작은 지역단위에서 생활상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수많은 움직임들이 자생적 형태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판공비 공개운동’, ‘의정지기단’ 등 지방행정이나 의회를 일상적으로 감시, 견제하고 정책개선을 요구하는 활동도 보편화되었다.
그런데 초보적인 권리찾기운동 수준을 넘어선 보다 성숙한 “참여”와 “자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풀뿌리시민운동을 전개하는 많은 활동가들은 이를 “주민자치”라는 말로 표현한다. 주민자치는 말 그대로 주민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지역을 운영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의 민주주의제도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의 여러 문제에 대한 결정과 그 해결을 위한 활동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주민자치가 가능하려면 그 주체인 지역주민들의 의식과 능력의 성장이 동반되어야 한다. 권리의식만이 아닌 책임의식,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실행능력을 갖추어나가야 하며, 자신들의 이해에만 머물지 말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의식으로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자치는 완벽하게 규정된 어떤 형태를 갖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의 성숙도에 따라 그 형태와 정도가 결정될 수 있다. 즉, 주민자치는 훈련이고 계속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풀뿌리시민운동의 향후 전개방향과 관련하여 고민되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풀뿌리시민단체들의 사명과 활동의 목적은 주민들의 권익을 옹호․대변(advocacy)하며,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참여(participation)를 통해 주민들의 정치력을 비롯한 제반 영향력의 증대(empowerment)를 꾀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다 성숙한 참여와 자치, 주민들의 공동체의식 성장을 통해 지역사회공동체의 근본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민운동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활동방식이 요구되고 그를 촉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주민참여형 풀뿌리시민운동” 혹은 “풀뿌리공동체운동형의 시민단체”들은 아래로부터의 운동, 즉 삶터에서, 가족과 이웃과 지역사회를 돌보고 함께 하는 운동을 중시한다. 또 주민참여․밀착형 프로그램을 주로 전개하고, 단기적 잇슈가 아닌 지속적 실천을 통해 성과를 축적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지역자원의 발굴․연계․동원전략을 구사한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주민참여형 풀뿌리시민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전개양상과 특징을 보이고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하겠다.
(2)
주민참여형 풀뿌리시민운동은 같은 환경문제를 소재로 운동을 전개하더라도 기존의 전문환경단체들과는 다소 다른 운동방식을 취하고 있다. 기존의 환경단체들이 환경오염에 대한 감시와 고발, 정부와 기업의 환경정책전환 촉구를 주 사업방식으로 활동하는 데 반해 풀뿌리시민단체들은 지역주민들의 환경의식 고취와 친환경적 생활양식의 정착을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풀뿌리지역에서의 주민환경운동의 운동방식상의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사람들의 의식변화, 생활양식의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사업을 앞세운다는 점이다. 둘째 주민들을 직접 실천의 주체로 만들고 조직화함으로써 생활실천운동으로 정착시킨다는 점이다. 셋째 환경문제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지역공동체의 활성화에 기여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서울 신림동에 있는 한 시민단체는 4년째 ‘도림천살리기운동’을 전개해왔다. ‘도림천살리기운동’은 하천주변 주민들의 가족단위 생태기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동네하천의 물속생물을 관찰하고 간이수질측정을 해보면서 자신들의 가정에서, 생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생태기행으로 시작된 ‘도림천살리기운동’은 교실밖 환경교실과 순회환경교실로 확산되었고 동네하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우기 위한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하천문화제로 발전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관악구 관내에 관심있는 단체와 주민들이 참여하여 지속적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모임’을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조직화로 연결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도시의 중소하천들은 이미 하천의 본래적 기능을 상실한채 거대한 하수구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하천복개 등으로 인해 자정능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시민들의 접근성은 상실되어 도시하천오염이 단기간에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런데 친환경적 녹색도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각종 오염원의 규제와 당국의 효과적인 환경정책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수적인 것은 지역주민들이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활동에 직접 나서도록 하고 생활양식 자체를 친환경적인 것으로 전환할 때 가능한 것이다. 하천환경의 복원문제도 우선 주민들 스스로가 동네 주변의 개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기 삶의 일부로서 친숙하게 대하며 생태복원의 주체로서 참여토록 하는 것이 핵심적인 것이다.
서울 목동아파트지역에서는 음식물쓰레기의 처리와 재활용과 관련하여 새로운 방식이 한 시민단체의 주민지도자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생활환경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음식물쓰레기문제이다. 매립이나 소각방식에 의한 처리가 또 다른 환경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 건설문제와 관련한 지역간 이기주의(님비현상)도 많이 여론화된 문제이다. 이 단체가 도입한 방식은 EM이라고 하는 혐기성 미생물발효제를 사용한 남은 음식물의 퇴비화, 사료화 방식이다. 이 사업은 주민들을 환경회원으로 가입시키고 각 가정에 직접 EM을 나누어주어 가정에서부터 발효된 남은 음식물을 일주일에 2회 수거하여 파주에 있는 환경농장과 주변농가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강서양천지역에 3000가정, 은평지역에 500가정정도가 가입되어 있으며 파주농장은 오리사육과 각종 작물재배, 그리고 주말환경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다소 귀찮더라도 직접 가정에서부터 발효제를 뿌려야 된다는 것이고 그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환경의식과 참여의식이 매우 중요하고 회원으로 조직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발효된 음식물의 재활용과정도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조직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경제성의 측면만 보는 일반 사업체에 맡길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 공익성과 주민조직화를 중시하는 시민단체가 주도할 때만 성과를 볼 수 있다. 이 사업은 친환경적인 리사이클링 방식이라는 장점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환경의식 제고와 참여, 주부들의 환경농장 견학, 학생들의 자원봉사 참여 등의 프로그램을 결합함으로써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토대를 제공하는 사업기반이 되고 있다.
앞의 사례뿐 아니라 대체적으로 지역주민들과 직접 결합한 다른 환경운동들도 환경문제를 소재로 하고는 있지만 환경보전 그 자체뿐만 아니라 환경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받는 생활공동체의 연관성을 자각하게 하고 그를 친환경적으로 개선해 가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생협운동 같은 경우에도 유기농산물의 유통을 매개로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연결, 도시와 농촌간의 협력을 도모함으로써 상생(相生)의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하는 데 궁극적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공동체의식의 촉진과 함께 주민참여와 조직화도 풀뿌리시민운동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환경문제에 대한 한국시민들의 의식은 비교적 높아 다른 사안에 비해 주민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운동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일회적인 행사, 교육 등에 참여한 주민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고 교류하고 실천할 수 있는 조직으로 묶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결국 지역주민의 참여는 조직화로 연결되어야 하고 주민조직을 만듦으로써 운동의 목적을 더 잘 실현할 수 있다.
(3)
문제제기형, 잇슈파이팅형의 시민운동도 주민들을 조직하고 동원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조직의 성격이 즉자적이고 한시적이다. 지역개발, 철거문제 등 외부로부터 주어진 어떤 자극에 의해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면 공동의 이해가 걸려있는 다수의 주민들이 쉽게 결집하게 되고 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주민들의 힘을 결집하게 했던 외부의 자극요소가 사라지게 되면 그 응집력은 쉽게 무너지고 조직적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즉, 주민들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즉자적이고 한시적인 조직활동을 통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지속가능한 지역사회활동에의 참여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주민참여를 중시하는 풀뿌리시민단체들의 활동은 대개 일상적인 문화, 교육 프로그램의 실행과 그를 매개로 한 주민조직화를 시도하게 된다.
부산 금정구의 금샘 사랑방 문화클럽은 마을 뒷산을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같은 아파트단지의 주민들이 모여 창립한 조그만 모임에서 비롯되었다. 이 모임에서는 단오잔치를 시작으로 문학의 밤, 마을 음악회 등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행사를 주관하였고, 더 나아가 일상적으로 민속춤 교실, 노래교실, 국악교실, 연극교실, 사진교실 등과 같은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일상적 교육프로그램의 운영과 마을공동체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문화행사를 통해 금샘마을 주민들은 서로간에 많은 접촉과 유대감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는 지역의 공동체정신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 강북구의 열린사회북부시민회는 10여년 이상 정기적으로 지역주민 대상의 풍물강습을 해왔고 풍물강습졸업생들이 회원으로 등록, 풍물패를 구성하고 시민회 활동에 참여해왔다. 그런데 이들은 일상적인 프로그램 운영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의 공동체문화형성과 문제해결을 위한 실천활동에 대한 모색을 끊임없이 확대해오고 있다. 대보름 지신밟기, 단오잔치 등의 마을문화행사와 그 성과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벌이는 ‘가고싶은 놀이터 만들기’ 사례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비문해(非文解)여성들을 위한 야학에서 출발한 안양시민대학의 사례도 일상적인 프로그램 운영을 토대로 지역사회 참여로 나아가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안양시민대학은 주민교육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단체였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학생으로 수강을 하였던 주민들에게 교사의 역할을 부여케 한다든지 지역사회의 환경문제나 복지문제에 대한 자원봉사 참여를 유도하여 좋은 성과를 보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일상적인 교육프로그램은 좋은 통로 역할을 한다. 특히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은 지역사회의 여성들이 시민운동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앞의 북부시민회는 어머니가 교사로 함께 참여하여 공동체교육을 추구하는 ‘책마을유치원’ 사업을 일상적으로 펴왔고 송파구의 한 시민회도 어린이도서관을 매개로 취학전 아동들의 공동교육과 회원가족들간의 공동체적 유대를 높여가는 ‘함께 크는 우리’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프로그램의 경우 이것이 단순히 주민참여를 끌어내는 수단적 의미로 전락하면 실패하고 지속성을 잃게 된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내용이고 목적이다. 입시경쟁 위주의 찌든 교육현실에서 부모들은 더 나은 대안적 교육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전인교육, 공동체 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제도교육 안에서나 사설교육기관을 통해서는 충족될 수 없는 이러한 요구들을 스스로 조직하고 해결해 가는 데 시민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풀뿌리공동체운동형의 시민단체들은 자신의 주 사업분야를 주민들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에서의 생활실천운동에 두고 있다. 환경, 복지, 교육, 지방자치 등 다양한 사업을 벌리고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과정에서 참여하는 지역주민들의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느냐 하는 것이며 결국 더불어 함께 사는 지역공동체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적 인간관을 넘어서서 성찰하는 ‘참나’를 발견하고 개발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을 실천하는 회원들의 모임을 확대하는 조직활동을 중요시한다. 그 동안 시민단체들은 사회를 향해 발언하고 개입하는 것에 많이 치중해왔다. 그를 통해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다 좋은 일이기는 하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시민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회원들의 성장과 발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관계맺음을 통해 살아가는데 시민회의 각종 활동이나 모임에의 참여도 관계맺음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만남은 전혀 새로운 만남이다. 가족과 같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생적으로 주어진 혈연적 만남도 아니고 먹고살기 위한 경제적 활동을 위한 만남도 아니고 한 국가의 국민과 같이 의무지어진 만남도 아니며 개인의 취미나 선호를 위한 동호모임도 아닌, 철저히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하고 책임지며 모임활동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만남인 것이다. 회원들의 생활과 모임을 풍요롭게 하고 그 속에서 회원들이 성장하게 하며 회원의 힘으로, 생활실천의 조직을 통해 사회를 근저로부터 변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4)
지역복지분야에서도 주민참여를 앞세우는 풀뿌리공동체운동형의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을 비판하고 그 개선을 요구하거나 또는 직접적인 서비스의 공급을 대행하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지역사회 복지문제의 해결을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직접 조직, 동원하고 회원을 비롯한 지역주민들을 문제해결의 주체로 만들어 가는 데 주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주민참여형 지역복지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지역문제의 해결에 있어 정부와 기업 등 지역공동체 바깥으로부터의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공동체 내부의 기관들, 기업들, 학교, 병원, 복지관, 시민단체, 주민자원봉사자와 같은 지역자원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주민참여를 통해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지역사회의 여러 문제들 즉 범죄, 교육, 도시계획, 교통, 실업 등 너무나 많은 부분들을 중앙정부에 의존해왔고 당연히 그 관계는 종속적인 것이 되었다. 서구의 복지국가형의 정책들도 문제해결의 자원을 주로 외부에 의존하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지역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소모적인 자원의 반복투입을 계속하게 만들어 왔다. 앞으로는 지역공동체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능동적인 주민참여를 이끌어내는 지역복지모델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
또한 문제해결과정에서 적극적인 자원봉사자의 조직과 활용에 역점을 두려하고 있다. 자원봉사의 조직은 단순히 인적자원의 동원이란 측면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변화와 결부하여 적극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즉 단순히 현재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서비스의 제공이 아니라 미래적인 대안제시와 인성교육의 측면에서 그 적극성을 평가하고 있다. 또한 서비스의 수혜대상자들도 생활상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원을 공급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노동의 의욕을 갖고 자활할 수 있는 기반과 기술을 갖추는 것을 돕는 방식을 결합하고 있다.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의 경우 지역주민단체가 IMF사태이후 발생한 지역의 실업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대표적 사례이다. 지역주민 중에서도 실업위기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된 일용직 노동자들로 공동사업단을 만들고 집단적 노력을 통해 각종 일거리를 창출하여 자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앞에서 언급한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사업을 벌이는 데 있어 은평지역의 시민회는 그 수거와 홍보활동에 국민기초생활법상의 조건부수급자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이는 환경사업과 사회복지 자활사업이 결합한 형태이다.
은평시민회는 또 ‘열린 학교’라는 이름의 무료방과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결식아동에 대한 급식제공이나 방과후 숙제물이나 학습지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편부모, 부모동시취업, 기타 사유 등으로 방임되어 있는 저소득가정의 아동들을 학교 방과후에 맡아 통합교육방식으로 질 높은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방과 후 학교의 운영에는 지방자치단체나 민간기금 등의 공익자금의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치과의사회의 무료진료라던가 지역주민들의 물품결연 등을 끌어내고 지역주민 및 대학생들을 자원봉사교사들로 조직하고 있다. 강북지역의 북부시민회는 무의탁노인 집수리사업을 도배 등 전문기술을 가진 회원과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하여 벌이고 있다.
이상에서 주민참여형 풀뿌리시민운동이 갖고 있는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간단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주민들의 생활상의 문제, 삶터에서 발생하는 문제로부터 운동의 소재를 찾는다. 둘째, 단기적 잇슈가 아니라 지속적인 실천활동을 통해 성과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셋째,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식변화, 생활양식의 변화를 추구한다. 넷째, 주민 스스로가 실천과정에서 역할을 찾도록 한다. 다섯째, 문제해결을 위해 지역사회내의 각종 자원을 발굴하고 연계하고 동원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여섯째, 자원봉사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활용한다. 일곱째, 해당사안뿐 아니라 지역사회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불러일키도록 한다. 여덟째, 일상적인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회원소모임, 각종 동아리활동 등을 조직한다. 아홉째, 회원들의 성장과 발전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들을 잘 살펴보면 풀뿌리시민운동이 주민을 참여시켜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곧 풀뿌리공동체운동의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점이 드러나게 된다. 다음에서는 풀뿌리공동체운동이 왜 주민들의 참여를 중요시하는지 그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하는지를, 그리고 풀뿌리시민운동을 활성화하고 주민들의 지역사회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해 마련해가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3. 주민참여의 목적과 활성화 조건
(1)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지방자치를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직접 선출하는 일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주민운동의 모습도 자기권리찾기, 우리동네권리지키기 차원의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지방자치 수준은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온 국가주도의 사회문화, 중앙집권적인 행정에서 벗어나 이제 기지개를 켜는 수준인 것이다. 지역문제의 해결에 주민을 참여시킨다는 것은 지역주민을 문제해결의 주인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권리를 적극적으로 찾고 주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공의 문제에 대해 방관자적 자세에서 벗어나 책임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참여의 시작은 자신의 삶터에서부터이다. 생활주변의 여러문제들은 함께사는 이웃들과 연관성을 갖고 발생한다. 그리고 그들과의 이해와 갈등 조정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조건과 질서를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생활하는 데 고통과 불편을 주는 생활환경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개선하며, 공용시설이나 장소 등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삶터 가꾸기’는 새로운 주민 참여의 좋은 출발점이다. 공유공간에서 벌어지는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개선하며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단절된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의사소통의 경로와 시스템을 형성해가는 것, 그것은 공동체를 이뤄가는 과정이다. 또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문제에만 집착하던 개인들이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웃과 더불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학습하고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민주시민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같이 풀뿌리공동체운동에 있어 주민참여의 궁극적 목적은 참다운 공동체 형성에 있다.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삶터가꾸기이고 사람만들기이다. 개개인의 의식변화없이 사회적 시스템의 변화가 자연적으로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가중심적 사고에 빠져있었다. 근대사회가 국민국가체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우리의 생활도 그러한 관성 속에서 길들여져 왔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사회시스템과 생활양식만으로는 우리의 삶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풀뿌리공동체운동은 사회전체적으로 보면 새로운 사회운영원리를 만들고 쌓아가는 과정이다. 20세기를 포함한 근대사회에서는 제1섹터의 원리인 법과 공공권력의 질서, 제2섹터의 원리인 경쟁과 교환이 주요한 사회운영원리로 작동하였다. 그 결과 현대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안게 되었다. 비대한 정부기구와 막대한 재정적자,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물질만능과 인간소외로 인한 각종 사회적 병폐의 만연,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사회문화풍토 등등.... 정부실패, 시장실패로 표현되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대안으로 21세기 사회운영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자율적 시민참여와 자원봉사의 원리에 의해 운영되는 제3섹터인 것이다.
풀뿌리공동체운동은 제3섹터적인 새로운 사회운영원리를 사람들로 하여금 체득케 한다. 사람들은 지역사회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참여하여 그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자기존중만이 아니라 타인존중을 배우게 되고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체득하게 되며 자기통제의 기술과 자치의 원리들을 배우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풀뿌리시민운동이 추구하는 주민의 지역사회 참여는 미래사회를 주도할 새로운 생활양식을 예비하고 훈련하는 과정으로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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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풀뿌리시민운동을 활성화하고 주민들의 지역사회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해 마련해가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많은 과제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정부정책 및 행정지원과 관련하여 현재 시점에서 꼭 강조되어야겠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점들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사회의 자원봉사문화를 활성화하고 그 활동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고 싶다. 자원봉사는 근대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원리에 의해서 실현된다. 기존의 사회운영원리가 이윤동기를 매개로 철저한 경쟁과 교환(give and take)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자원봉사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회전체와 그 구성원들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다. 자원봉사는 또한 내가 사는 지역사회의 주인이 바로 나, 우리 자신이라는 주인의식을 갖게 하고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지역주민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는 지역사회에 대한 공동체의식과 연대 의식을 갖도록 한다. 공동체 의식이 형성될 때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주민들의 협동과 노력으로 예방되고 해결되며,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
지역자원봉사센터 운영에 있어 관주도를 탈피하여 민간 자율적인 운영으로 유도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자원봉사센터가 설치되고 자원봉사자 모집캠페인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자원봉사센터가 지방정부의 부설기관처럼 운영되거나 관련부서의 직접 통제하에 있는 현상은 우려스러운 점이다. 또 민간역량의 준비정도와 무관하게 형식적으로 무리하게 설치되고 있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자원봉사센터는 자원봉사의 본래 취지대로 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관은 민의 육성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 또 지역사회 자원봉사활동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 지역센터를 중심으로 다른 자원봉사센터들이 통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것이 행정관리의 편의를 위한 기재로 작동하지 않도록 자원봉사단체간 협의를 강화하고 각 분야별 자율성을 존중하며 기존의 해당 정부부처로부터의 계속적인 지원을 전제로 해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자원봉사운동의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위해 자원봉사전국센터의 설치와 운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재정을 포함한 대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국센터의 운영은 민간의 자율성에 맡겨야 하며 정치적인 외풍을 타지 않도록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원봉사 관리자 및 지도자의 교육 및 훈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직업적 전문관리자의 훈련도 중요하지만 자원봉사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이끌 수 있는 중간지도자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존 사회복지계 종사자뿐 아니라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훈련하고 시민단체 활동회원들과 일선 초, 중, 고등학교 교사들을 자원봉사 중간 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은 자원봉사자를 확대하고 운동을 일상적으로 조직하는 데 주춧돌이 될 것이다.
(3)
다음으로 민․관 파트너십에 대한 지방행정의 마인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풀뿌리시민단체들은 대부분 주민의 권익을 옹호하고 지방정부을 비판, 견제하는(advocacy) 역할뿐 아니라 주민 삶의 질 향상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서비스의 제공과 지역주민들의 문제해결 능력 및 영향력의 증진(empowerment)을 중요한 자기 역할로 하고 있다. 점차 후자의 활동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전자의 활동에 비해 후자의 활동은 그 특성상 많은 재원과 인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는 활동이며 그 필요자원의 상당부분을 공적 성격의 국민세금에서 공급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정부가 방치하였거나, 직접 수행했거나, 또는 새롭게 제기되는 공공서비스의 제공책임을 상당부분 풀뿌리NGO들과 함께 나누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추진이라는 행정요구의 측면에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건강한 시민사회의 형성과 발전은 전통적인 정부의 역할로는 한계가 있고 시민사회의 자율성 신장과 책임성 제고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관파트너십의 형성을 말할 때 중요한 것은 관의 필요에 따른 민의 활용이라는 퇴행적 관점은 말할 것도 없고 민․관이 동등한 주체로서 계약맺고 협력해야 된다는 시장경제적인 동기를 넘어서서, 시민사회공동체의 형성발전을 위해 NGO가 보다 적극적인 주체로 나서도록 지지, 지원하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이제까지 행정에서의 민․관협력 모델은 관이 주도하고 민은 그에 협조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민이 주도해야 할 것과 관이 주도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 민이 주도해야 할 것은 관이 할 수 없는 것들로 주민자치력의 향상과 지역공동체의 형성과 같은 것이 바로 그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민․관파트너십의 전형은 주민들의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한 활동(software)을 민이 담당하고 관은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행정적, 재정적, 시설적 지원(hardware)을 담당하는 모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경, 교통, 교육, 복지, 범죄, 재난관리, 시설유지 등 지역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주민 스스로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참여하여 해결하는 주체로 되도록 하는 것이고, 행정은 이러한 과정을 안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읍․면․동사무소의 기능전환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주민자치센터가 설치되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주민자치센터의 운영현황을 보면 위와 같은 민․관파트너십에 입각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 단지 행정기능재편의 측면에서만 동기능전환을 바라보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에 여러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즉 행정인력 감축과 동사무소의 기능이전에 따른 공간활용이란 측면에서 주민자치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주민자치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주민자율단체를 참여시키거나 지역공동체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는 관심이 부족하다. 또 행정의 연장선에서 문화, 복지 서비스의 확대라는 기능적 측면만이 강조되고 있으며 그나마 여러 가지 부작용과 한계를 낳고 있는 것이다.
주민자치센터가 올바로 정착하려면 말 그대로 주민자치센터를 주민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주민자치원회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높히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주민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치센터를 운영하고 공무원은 공공시설물에 대한 관리와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행정적 지원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한다면 주민자치센터는 새로운 민․관파트너십의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주민참여형 풀뿌리시민운동을 이끌어가는 활동가들을 양성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사회운영의 원리가 다 그렇겠지만 운동은 주체가 중요하다. 그것도 초기투자가 매우 중요하다. 강한 공익성과 미래적 가치의 실현을 본질로 하는 풀뿌리공동체운동의 특성상 그 성장발전을 좌우하는 키포인트는 목적의식성을 갖는 운동주체가 얼마나 튼튼하게 형성되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풀뿌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상근 활동가들은 정말 헌신적이고 도덕적이며 유능한 인재들이다. 하지만 언론 등 사회적 관심과 영향력이 높지 못한 상태에서 주민밀착형의 생활실천운동은 활동가들에게 많은 인고를 감수하도록 요구한다. 이들에게 그들이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몫만큼의 사회적 인정과 활동을 지속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안정적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지만 리더십 교육과 인재개발에 보다 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상근 활동가의 재충전을 위한 여건 마련과 공동의 연수 프로그램 마련, 전문적 활동 인력 양성 및 지도자 성장과정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또 정보화, 세계화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인터넷교육, 외국어 연수, 국제NGO간의 인턴교환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능력의 신장도 중요하지만 비젼은 탄탄한 철학적 기반에서 나온다. 인간본질과 시대와 세계 흐름에 대한 안목을 갖출 수 있도록 깊은 성찰과 토론문화가 정착되어야 하며 세부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도 필요하지만 통찰력과 소명의식을 갖출 수 있는 인문적 교양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진정 21세기 우리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한 올바른 비젼과 장기적 안목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주민참여형 풀뿌리시민운동의 역할과 성장에 주목하고 그 활동가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풀뿌리시민운동에 있어 주민참여는 단순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과정에 참여하고 주체가 됨으로써 지역공동체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 스스로 공동체의식을 체득하고 지역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풀뿌리공동체운동이 추구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주민참여를 중시하는 풀뿌리시민단체들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추구한다. 삶터에서 생활상의 문제를 소재로 주민밀착형의 프로그램을 전개한다. 그들은 문제해결과정에 지역자원의 연계와 동원그리고 자원봉사의 활성화를 중요시한다. 그들은 일상적 문화․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회원모임을 조직한다. 그들이 이러한 제반 과정에서 성과로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참여하는 주민들의 성장과 발전이다. 권리의식을 넘어 선 책임의식,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책임감, 주민자치의 원리를 체득하는 것, 이런 것들이 확인하고자 하는 성장의 징표이다. 풀뿌리공동체운동은 밑으로부터의 사회변화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율성에 기초하여 사회적 공동선을 실현하는 새로운 공동체문화를 형성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개인주의와 국가중심주의에 지배받는 근대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사회적 실천이다.
< 참고문헌 >
주성수, 『공동생산과 자원봉사』, 한양대 출판부, 1999
주성수, 『시민사회와 제3섹터』, 한양대 출판부, 1999
정 석, 『주민참여형 마을만들기 사례연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1999
이 호, 『현장에서 배우는 주민조직 방법론』, 한국도시연구소, 2001
열린사회시민연합 편, 『현대 진보이론의 재평가』, 1999
열린사회시민연합 편, 『주민자치센터 무엇을 해야 하나』, 2000
열린사회시민연합 편, 『풀뿌리공동체운동 활동가 워크숍 자료집』, 2000
한국기독교사회발전협회 편, 『21세기 대안적 지역주민운동모색』, 2000
한국도시연구소 편, 『도시공동체운동의 현황과 전망 워크숍 자료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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