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센터의 현주소와 바람직한 개선방향
행정자치부가 읍면동사무소의 기능전환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주민자치센터의 설치는 시범실시를 거쳐 2001년 현재 전국의 자치구 및 일반시의 동 1,655개소로 확대시행되고 있다. 도농복합시 및 군의 읍면동에 대한 시행은 현재 시범실시지역에 대한 평가작업을 마치고 올 년말까지는 자치단체당 2~3곳의 설치를 목표로 준비 중에 있다. 주민자치센터의 설치는 행정기능의 전환과 맞물려 현정부의 100대 개혁과제 중의 하나로 추진되어왔고, 초기의 읍면동사무소의 폐지와 주민자치센터로의 전환계획에서 후퇴하여 읍면동사무소의 존속과 일부업무의 이관 그리고 남는 공간을 활용한 주민자치센터의 설치로 변경되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운영되고 있는 여러 지역의 주민자치센터 현황을 조사해보면 과연 주민자치센터가 본래의 목적에 걸맞게 주민자치의 강화와 지역공동체 형성을 위한 구심체 역할을 다할 수 있을 지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주민자치위원 구성이 기존 관변인사나 정치적 성향의 인사들도 채워져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시설과 프로그램 운용이 천편일률적이고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민간사설기관과의 프로그램 중복문제, 낮은 프로그램의 질, 동사무소 시설노후 및 협소로 인한 활용공간의 부족문제, 저녁시간이나 주말과 같은 일과시간 이외의 활용이 어려운 문제, 담당공무원의 업무과중과 전문성 부족, 강사 등 자원봉사자의 참여 저조, 민간시민단체나 지역주민의 참여 저조, 예산확보의 어려움 등등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99년 말 행자부의 시범실시지역에 대한 자체 평가보고나 열린사회시민연합의 2000년 모니터 결과, 그리고 각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진행한 여러 모니터 결과에도 비슷한 문제점으로 공히 지적되고 있는 점들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발생한 원인과 관련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분석이 필요하고 그 개선점과 관련해서도 여러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 기본관점만을 제기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역사, 그 중에서도 형식적인 대의제 선거제도가 아닌 주민의 직접참여라는 측면에서의 주민자치 경험이 일천하고 풀뿌리단위에서의 민간시민운동의 역량축적이 초기단계인 현재의 지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주민자치센터의 설치와 운영을 통해 주민자치와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한다는 기본방향은 옳고 시의적절한 것이었지만, 기능을 전환해나가는 행정당국의 추진방법은 행정편의적이고 중앙집권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마디로 말해 총론과 방향은 옳지만 시행방법은 구태의연하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자치센터들이 목적성을 상실하고 실용성을 고려하지 않은 형식적 시설설치, 지역실정과 무관한 베끼기식 프로그램 운영 등 중앙행정부의 일반적 지침에 따른 천편일률적 시설배치와 프로그램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주어진 동사무소의 공간내에서의 시설배치와 프로그램운영에만 매달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지역내 교육, 문화, 복지 등 여러 공공시설과 기관들간의 연계체계 구축을 통한 지역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지역공동체활성화의 취지가 살려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행정의 자율성이 극히 낮아 현장실정에 근거한 융통성있는 업무기획과 집행이 안되고 있는 사정과 관련이 있다. 담당공무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고 형식적 지침수행에 머무르는 현재의 문제점은 실적보고 중심의 행정문화가 낳은 폐단이기도 하다. 기능전환이 추진된 읍면동지역에서도 실질적 행정업무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조사통계 업무보고 등 상급행정부서의 업무협조요청 등으로 많은 행정실무력이 소진되고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고, 주민자치센터관련 업무만을 맡는 전담공무원이 없고 부가적 업무로 취급받는 것이 현실이다.
주민자치와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주민자치센터의 설치와 운영은 우리사회 발전의 장기적 비젼을 개척하는 것이고 시민사회 전반의 생활문화를 개혁하는 운동적 성격의 문제이다. 행정기능전환과 시설재배치와 같은 단기간의 행정적 조치로만 될 일이 아니고 주민자치역량의 육성과 풀뿌리시민단체에 대한 지원 등 정책적 판단과 사회운동적 흐름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장기적 관점에서 ‘시설’이 아니라 ‘사람’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가 만난 일선의 담당공무원은 이를 한마디로 "우리지역에는 NGO가 없다"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국민의 정부’ 초기부터 제2건국위원회가 각 읍면동지역에 이르기까지 조직되었지만 실제 살아 움직이는 조직은 거의 없다. 관련 공무원들에 의한 형식적 활동보고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민간자율적인 풀뿌리시민단체나 자생적인 주민조직들이 읍면동단위까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읍면동사무소의 인력이 축소되고 행정기능이 재편되면 "산불은 누가 끄나? 눈은 누가 치우나? 공공시설의 보수와 관리는 누가 하나?"라는 일선 공무원의 항변은 나름대로 이유있는 것이다.
주민자치센터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의 주민리더십이 형성되고 배출되어야 한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지역 유지들의 친목모임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선거철에 정치바람에 휘둘리게 된다면 주민자치센터의 전망을 찾아가는 데 매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 지역개발위원이나 관변인사에만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을 발굴하고 역할을 주어 성장시켜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정’이다. 자율적인 운영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더 나은 민주주의로 훈련되는 것이다. 주민자치위원회의 구성을 과감히 개방하자. 지역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민추천과 직접선출을 시도해보자. 연령, 직업별 배정비율을 정해볼 수도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역할도 확실하게 밀어주자. 단순 심의자문기구는 자치형의 지도자를 배출할 수 없다. 직접 센터운영주체가 되어 책임지고 일하게 해야 한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소모임, 동아리를 만들고 그들의 대표를 센터운영위원으로 참여시키자.
센터가 활성화되려면 전담실무자 양성이 필수적이다. 현재의 주민자치센터업무는 담당공무원의 부가업무일 뿐이다. 전담실무자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주민을 조직하는 능력이다. 기존 행정공무원의 마인드만 가지고는 어렵다. 별정직 등으로 전문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그에 따른 예산이 지원되어야 한다. 기존 공무원 중에 관련 전문성이 있는 인력을 재훈련 과정을 통해 배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민운동의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풀뿌리시민단체의 활용이 매우 중요하다. 풀뿌리시민단체들이 실무자를 파견하거나 프로그램을 위탁받아 운영할 수 있는 유인력을 만들고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시민단체들도 지역사회에서의 파트너십 형성과 단체중심의 사고를 넘어선 지역공동체를 위한 역할강화라는 마인드의 전환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동사무소라고 하는 공간을 중심으로 주민자치센터 운영을 사고하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 지역사회의 학교나 공공시설, 민간공익시설 등과의 연계체계를 만들고 아파트자치회, 부녀회, 반상회, 직선 통장제 등 주민자치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동사무소 공간에 문화, 복지 관련 시설을 설치하거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매몰되지 말고, 주민자치기능을 발굴하고 연결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중앙정부나 중앙매스컴의 홍보나 보도, 캠페인 등을 적극화해서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자원봉사 지원법’을 제정하여 자원봉사에 대한 지원, 인정, 보상과 같은 자원봉사 활성화 기반을 제도화해야 한다. 시설비 위주의 국비지원을 지양해야한다. 오히려 주민자치역량을 활성화하고, 주민소모임, 자원봉사그룹, 풀뿌리시민단체의 육성에 주력하고 그를 지원하는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가 낮은 현 실정에서는 중앙정부차원의 재정투입이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일률적인 기능전환과 ‘작은 재원 쪼개서 나눠주기’를 하지말고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서 모델을 세우고 확산하는 방식으로 해야 효과가 있다. 또 정부의 출연과 민간모금 등을 통해 ‘공동체활성화기금’과 같은 중립적 지원기관을 만들고 이를 통해 체계적으로 풀뿌리공동체운동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보아야 한다.
주민자치센터의 설치와 운영은 수십년에 걸친 장기적 플랜이란 생각을 갖고 분명한 목적의식과 지속성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기반조성을 충실히 해나가야 하며, 모델을 세워 확산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행정시스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치센터를 담당해나갈 사람, - 주체형성과 주민자치기능의 활성화를 위한 각별한 노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박홍순(주민자치센터활성화를 위한 풀뿌리네트워크 총무
http://www.grassroot.net
(사)열린사회시민연합 사무처장
http://www.openc.or.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