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및 토론 참고자료
박홍순
8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의 진보운동을 크게 분류해 보면 민족민주운동이라 지칭되던 전통적인 사회변혁운동과 89년 창립된 경실련을 필두로 최근에 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참여연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민운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80년 민주화의 봄이 좌절되고 광주학살을 통해 군부가 재등장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우리 사회의 양식있는 사람들은 과연 한국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민주화가 가능한가 하는 깊은 회의에 빠졌고, 청년학생운동은 그 해결방법을 맑스의 세계관과 역사관에 입각한 근본적인 변혁운동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좌파의 부활은 급속하게 그리고 그 영향력은 빠른 속도로 커져 현재 시점에서는 큰 현실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어쨋든 87년 6월항쟁은 이런 좌파적이고 변혁적인 사회운동세력과 전통적 민주화세력(종교, 재야 등) 그리고 야당정치인들이 연합하여 당면한 직선제 개헌이라는 절차적 민주화를 이루어낸 사건이다.
6월항쟁은 우리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진척시키는 데 분수령이 된 큰 사건이기도 했지만, 시민운동이 유의미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독재권력이라는 것은 단지 그 통치행위가 독재자 개인의 전횡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 행사의 구조적 권위주의 체제를 형성함으로써 시민사회를 위축시키고 자율적인 시민들의 정치적, 사회적 운동의 입지를 아예 형성할 수 없도록 만든다. 직선제 개헌을 통한 정치권력 생성 절차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또 그 과정을 전국민적인 항쟁을 통해 쟁취해 내면서, 시민들은 권위주의 시대에 억눌렸던 수 많은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고 이런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운동 형태가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권위주의 시대로부터 민주적인 시민사회로의 이행속도가 매우 빠른 데 비해 정치권의 변화는 거의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왔다는 것이다. 즉, 정치권이 사회 전체의 진보적인 요구를 대변하는 정책 제시나 그에 걸맞는 정치 행태를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이를 대신하는 위치로 시민운동이 인식되어졌고, 이 점이 우리사회의 시민운동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비약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권위적 독재체제가 무너지고 정치, 경제, 인권, 환경 등 사회 각 영역의 다양한 요구들을 수렴하여 구체적인 사회민주화를 진척시키는 데 시민운동이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정치 고유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논의를 차치하고라도 ‘과연 현재의 시민운동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담보하고 견인해갈 수 있는 비젼과 능력을 갖고 있는가’하는 점은 또 다른 측면에서 분석되고 비판적으로 성찰될 성질의 문제이다. 그것은 그간의 시민운동이 보여준 여러 한계적 측면에서 뿐 아니라, ‘21세기 한국사회의 새로운 진보의 방향이 무엇인가’하는 근본적 질문을 풀어갈 수 있는 관점을 획득하고 그를 시민운동의 역할과 관련해 사고해 볼 때만이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소개하는 글은 현재의 시민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와 과제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서 정리된 글로 21세기 한국사회의 진보를 고민하면서 시민운동의 현재를 분석, 토론하는 데 유의미한 참고가 될 수 있는 글이다.
<참고글 1>
*유종순,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과제와 지역공동체운동”, [열린사회] 통권 제23호, 2002년. 에서 발췌인용
이러한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시민․사회운동은 한국사회에서 이미 사회운영의 당당한 한 축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치투쟁에 집중됐던 과거 재야운동이 '사상성'에 기초한 조직과 도덕성을 무기로 했다면, 다양한 분야와 영역에서 진행되는 시민․사회운동은 전문성과 책임있는 정책적 대안 제시를 무기로 하게 되었으며, 이는 광범한 직업군의 시민들에게 참여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때문에 시민․사회운동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새로운 모색에 실패한 기존 재야운동의 몰락과 함께 한국사회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어쩄든 시민․사회운동의 지위상승과 활성화 현상은 바람직한 일이며, 사회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십년이 지난 지금, 시민․사회운동은 그들이 그렇게 거부했던 재야운동 처럼 방향타를 잃어가고 있으며, 구운동으로 전락될 처지에 놓여 있다. 우선 미래와 진정한 진보에 대한 고민을 근거로 새로운 전망부터 세울 일이다.
~ 중략 ~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시민․사회운동이 진정으로 역사와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대해 냉정히 분석하고, 그것을 근거로 한 전략과 전술을 만들어내야 한다. 현재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당면과제는 권위주의시대 이후의 새로운 사회발전의 상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사회발전의 주체인 시민들을 시민․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방도를 찾아내는 데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과제가 주요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운동의 주체 차원에서 ‘시민 없는 시민운동’현상을 극복하는 것이다.
현재 시민․사회운동의 활동양상은 소수 명망가 중심의, 마치 병졸은 없고 장군들이 전투하는 기형적인 모습이다. 정상적인 사회발전은 다수의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하고,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켜갈 때 가능하다. 따라서 시민의 힘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회발전과 시민․사회운동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모든 시민․사회운동은 시민사회의 각 분야와 영역에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확대,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적 가치의 실현은 법과 제도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시민의 주인의식의 성장이다. 이슈 중심의 활동, 사안에 대한 기능주의적 접근 등은 전문성으로 해결되겠지만, 이것이 바로 시민이 사회운영의 주체가 되었다는 보증은 아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민주적이라 해도 그것을 운영해야 할 시민들이 준비되고 훈련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시민의 참여를 어떤 특정한 사안이나 활동에 시민 의견이 반영이 되었느냐, 안되었느냐라는 단순한 차원에서 이해하면 안 될 것이다. 시민의 참여문제는 민주주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민주사회의 운영 능력을 갖춘 시민층이 사회 내에 튼튼히 형성될 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자가 없는 민주주의’라고 불렸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주의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한국 사회 발전의 수준을 제시하는 일이다.
한국 사회는 1987년 6월민주항쟁을 거치면서 시민․사회운동이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단절된 하나의 사안이나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와 대안 제시에 그치거나 기능주의적인 접근에 머물고 있다.
오늘의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큰 과제는 지난 시기 폭압적 권위주의 잔재의 청산(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한 사회개혁)과 21세기 새로운 미래의 사회상을 설계하고 다가서는 일이다. 이 두 가지 과제는 현상적으로는 다른 문제지만 정상적인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동시적 과제다. 그런데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는 과거청산의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의 사회발전의 상을 제시하고 다가서는 과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고민이 없이는 한 사회의 진보를 추동할 수 없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수구인지 어떻게 구별하겠는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한국 사회의 발전 수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미 세계는 우파와 좌파의 순환적 정권교체의 경험을 통해 양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발전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냉전질서의 유산인 흑백논리와 낡은 가치에 근거한 논쟁이 반복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발전의 현수준을 타산하지 못한 근본주의적 주장들이 사회개혁의 이름 아래 존재한다.
따라서 시민․사회운동은 한국 사회의 발전수준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시점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과제들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고, 나아가 정상적인 사회발전의 정책과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으며, 시민사회의 힘을 모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종합적인 전문성의 강화다.
한 사안에 대한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전체 사회를 보는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앞으로는 중요하다. 이는 현실 운동에서 문제제기식 운동, 일회성운동의 극복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과거의 폭압적 귄위주의 잔재의 청산의 차원에서는 문제제기식 운동이 어느 정도 유효하고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겠지만, 미래의 사회발전을 추동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분명 한계가 있다.
네번째는 정치운동에 대한 혐오감 극복이다.
많은 시민․사회운동의 지도자들은 정치운동 내지는 정치주의에 대해 과도한 결벽증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피해의식, 자신감 부족 등의 개인적, 혹은 정서적 이유가 크게 작용한다. 운동가란 모름지기 심판을 보거나, 옳고 그름의 판정을 내리는 재판관이 아니다. 나름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기준과 판단을 가지고 왜곡된 현실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이다.
가령 화장실 변기에 누가 쓰레기를 버렸다면, 쓰레기를 버린 행위에 대한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쓰레기를 치우는 동시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운동인 것이다.
그런데 유독 정치운동에 관련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아마추어리즘적, 결벽증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치운동도 분명한 시민․사회운동의 한 영역이다. 환경이나 소액주주운동이나 별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정치운동과 관련해서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실패쪽에 가깝다 하더라도 이는 극복의 문제지 혐오의 대상은 아니다. 이런 자세는 자신감의 부족이나 너무 소박한 아마추어리즘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시민․사회운동의 지도그룹의 근거없는 패배의식의 소산이며, 분명 잘못된 것이다.
아울러 이와 관련한 의미없는 중립주의도 문제다. 사안에 따라 이해 관계가 다를 경우, 중재라는 미명 아래 미봉책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특히 정부나 여야 정치세력과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협력과 비판의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 실천하기 보다는 정부의 정책에 동의하면 관변이고, 비판하면 운동적이라는 권위주의 시대의 논리는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다섯 번째는 사상문화운동의 활성화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이전의 민주화운동과 현재의 시민․사회운동은 어떠한 연속성과 차이가 있는지, 시민․사회운동의 세계관과 가치는 무엇인지, 21세기의 새로운 사회발전의 상은 어떠한지, 시민․사회운동의 방향과 그에 따른 전략과 전술, 등등 앞으로의 시민․사회운동을 향도할 사상문화적인 내용 마련이 시급히 요청된다. 이러한 문화사상운동은 풍부한 토론과 실험, 실천을 통해 앞으로의 운동에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 과제는 대부분의 시민․사회운동 지도그룹들이 재야운동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취하면서 진보운동의 연속성과 성과 계승의 측면을 간과한 후과다. 사회발전의 전망에 대한 풍부한 논의 보다는 소위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언론플레이’에 의존하는 사업형식이 주류의 형태로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의 담론은 수입품 이상의 독창적인 토착화를 이루지 못하고, 6월민주항쟁 이후의 한국사회 고유의 역사적 격동을 반영한 풍부한 논의로 발전되지 못했다. 단지 재야운동 전술에 대한 비판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만이 유일한 사상문화운동의 주제였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은 표적을 정권으로 옮기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의 한계는 21세기의 엄청난 현실변화를 예상하면서도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을 극복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데서 초래된 것이다. 새로운 천년의 인간의 문제는, 진보의 문제는 과연 어떤 것일까.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 이하 생략 ~
21세기 우리사회의 진보를 위해 시민운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우리 시민운동의 역할을 얘기하기에 앞서 21세기 세계는 어떤 흐름을 타고 있고 그 속에서 시민사회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제3섹터와 NGO의 역할에 대해 먼저 토론해보자. 다음 글은 필자가 다른 기회에 발표했던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참고글 2>
* 박홍순. “21세기 시민운동, 패러다임의 전환”, 2000년
21세기는 글로벌 시대와 함께 하고 있다. 동구권과 구소련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종결되면서 세계는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어가고 있으며, 정보통신의 발달과 함께 세계는 좁아지고 지구촌은 한울타리가 되고 있다. 빈곤, 환경, 인권, 평화, 주거 등 인류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공동과제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확산되고 그 해결에 NGO가 앞장서고 있다.
세계화(Globalization)는 전통적인 국민국가의 기능이 약화되고 인간들의 삶의 공간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국경을 넘어선 글로벌 시민사회는 이제 상상 속의 관념이 아닌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주권국가들의 포럼인 UN에서도 이제 NGO들을 국제사회의 완전한 참여자로 간주하고 있다. NGO는 오늘날 세계문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시민참여 방법이고 대표적인 유형이 되고 있다. 이제 시민운동은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행동하는(Think globally, Act Locally) 새로운 사고방식과 실천원리를 체득해나가야 한다.
각 국의 NGO가 국경을 넘어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고 한정된 자원을 나누면서 협력하는 연대활동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것은 전지구적인 생각을 갖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는 NGO의 당연한 임무이기도 하다. 국제NGO인 그린피스가 동해의 핵폐기물 유기에 반대하는 지역사회 환경단체들과 연대활동을 벌이는 것이 이제 자연스런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중략 ~
인류공동체의 새로운 전진을 위해 세계의 시민사회는 커다란 역사의 물줄기를 형성해가고 있다. 7,80년대에 걸쳐 우리 나라뿐 아니라 남미와 동구권에서도 민주화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고 이것은 시민사회를 형성, 발전시키고 각종 NGO들을 활성화시켰다. 개발도상국에서의 시민운동은 국제적 협력을 얻어 사회개발을 지원하는 개발NGO들뿐 아니라 토착적인 뿌리를 갖고 시민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으로 그 영역이 풍부해지고 역동적으로 변하였다.
선진국에서의 NGO는 80년대 이후 ‘커뮤니티 건설’, ‘파트너십 전략’ 을 내세우며, 기존의 계급대립 중심의 시민사회관을 비판하고 그에서 탈피하여 시민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요소들 즉, 정당, 노조, 교회, 각종 문화단체, 자선단체, 자원봉사단체, 지역사회단체 들간의 네트워크와 협력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고 건전한 시민질서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 중략 ~
21세기 우리사회에서 제3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질 것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되는 제1섹터나 시장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제2섹터와 달리 제3섹터는 자원성에 입각한 시민들의 참여와 비영리적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 .
제3섹터 조직들의 특성은 첫째로 민간(private)조직이라는 점이다.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비정부(nongovernmental)조직이다. 둘째, 비영리적(non-profit)이라는 점이다. 조직구성원들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익적 목적의 기금 모금을 통해 재원을 조달한다. 셋째, 자원적(voluntary)이라는 점이다. 조직의 주요사업과 활동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넷째, 자치적(self-governing)이라는 점이다. 조직의 의사를 결정하고 운영하는 원리가 외부의 간섭이 아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이해 민주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제3섹터의 특성들은 21세기 새로운 사회운영의 기초가 되고 있다. 비영리적이고 자원적이며 자치적인 NGO가 주도하는 제3섹터의 자율성과 창의력이 높아지고 상생, 협조, 사랑의 사회운영원리가 자리잡을 때 21세기 우리사회는 새로운 사회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처음에 살펴보았던 시민운동의 현 주소와 과제, 그리고 앞에서 얘기한 세계적 흐름에서의 NGO의 역할을 기초로 했을 때, 우리사회의 향후 발전방향과 그에 견인차 역할을 하려는 시민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자기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지 토론해 보자. 참고할 글로 3가지를 간단하게 인용해보았다. 첫 번째 글은 바로 앞에 인용한 필자의 글에서 발췌한 것이고 둘째 글은 필자가 일하고 있는 단체의 수련회자료집에 실린 글 중의 일부를 인용하였고, 마지막 글은 필자가 “시민운동, 자기성찰과 21세기 발전전망”이란 주제의 한 토론회에서 토론했던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참고글 3>
이제까지 우리사회에서 권위와 독점을 몰아내고 자유와 평등을 신장시키는 데 시민운동은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한국사회의 시민운동 발전단계를 거칠게 시대구분해 보면 87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을 제1세대 운동시기, 그 이후를 제2세대 운동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제1세대 운동의 특성은 ‘저항과 투쟁’의 운동이었다. 권위적인 독재권력에 맞서 강한 이념성과 정치성을 띠고 있었으며 90년대 초중반까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제2세대 운동은 87년 이후 열려진 공간을 통해 성장한 현재 우리사회의 주류 시민운동이다. 이 운동의 특성은 ‘비판과 권익옹호’라고 할 수 있다. 제2세대 시민운동은 우리사회의 민주개혁를 촉진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또 사회 여러 분야로 확산되고 전문화되었다.
그런데 비판과 견제, 그리고 정책대안의 제출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보다 근본적인 방향에서 총체적으로 사회의 운영원리와 발전방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시민운동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사회의 시민운동도 민주화의 진전과 시민의식의 성숙에 밑받침되면서 문제제기형 운동에서 가치지향형 운동으로 변화, 발전하여야 한다. 점차 비판과 견제, 권익옹호와 같은 전통적인 역할에서 제3섹터의 창출, 공동체 형성과 같은 미래 창조적인 역할로 옮겨가야 하는 것이다.
~ 중략 ~
21세기의 시민사회는 근대적 시민성(civility)이 갖는 개인주의적 한계를 넘어서 시민들이 자기존중뿐 아니라 타인존중을 배우며, 개인과 Community 간의 생동감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동체적 사회문화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세계는 대립과 경쟁, 투쟁의 원리보다는 상생과 협조, 참여와 자치의 원리들에 입각하여 사회발전의 동력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의 진보운동은 모순의 대립과 투쟁의 원리에 입각하여 세상을 해석하고 실천하였다. 그것은 전근대적인 억압과 굴종에서 해방되어 자아를 찾고 각성된 개인들간의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향해 즉,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투쟁한 역사였다. 그 성과를 딛고 21세기에는 더 나아간 인류의 비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개인과 공동체와의 조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비젼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보다 깊은 성찰과 성숙을 전제로 한다. ‘나’와 다른 ‘너’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함께 해야 할 ‘우리’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책임이 없이는 인류공동체의 새로운 비젼에 한발자욱도 다가갈 수 없다.
<참고글 4>
* 이숭규, “시민교육의 의의”, 열린사회 상근자수련회 취지문, 2002년
<참고글 3>
이제까지 우리사회에서 권위와 독점을 몰아내고 자유와 평등을 신장시키는 데 시민운동은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한국사회의 시민운동 발전단계를 거칠게 시대구분해 보면 87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을 제1세대 운동시기, 그 이후를 제2세대 운동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제1세대 운동의 특성은 ‘저항과 투쟁’의 운동이었다. 권위적인 독재권력에 맞서 강한 이념성과 정치성을 띠고 있었으며 90년대 초중반까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제2세대 운동은 87년 이후 열려진 공간을 통해 성장한 현재 우리사회의 주류 시민운동이다. 이 운동의 특성은 ‘비판과 권익옹호’라고 할 수 있다. 제2세대 시민운동은 우리사회의 민주개혁를 촉진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또 사회 여러 분야로 확산되고 전문화되었다.
그런데 비판과 견제, 그리고 정책대안의 제출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보다 근본적인 방향에서 총체적으로 사회의 운영원리와 발전방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시민운동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사회의 시민운동도 민주화의 진전과 시민의식의 성숙에 밑받침되면서 문제제기형 운동에서 가치지향형 운동으로 변화, 발전하여야 한다. 점차 비판과 견제, 권익옹호와 같은 전통적인 역할에서 제3섹터의 창출, 공동체 형성과 같은 미래 창조적인 역할로 옮겨가야 하는 것이다.
~ 중략 ~
21세기의 시민사회는 근대적 시민성(civility)이 갖는 개인주의적 한계를 넘어서 시민들이 자기존중뿐 아니라 타인존중을 배우며, 개인과 Community 간의 생동감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동체적 사회문화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세계는 대립과 경쟁, 투쟁의 원리보다는 상생과 협조, 참여와 자치의 원리들에 입각하여 사회발전의 동력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의 진보운동은 모순의 대립과 투쟁의 원리에 입각하여 세상을 해석하고 실천하였다. 그것은 전근대적인 억압과 굴종에서 해방되어 자아를 찾고 각성된 개인들간의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향해 즉,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투쟁한 역사였다. 그 성과를 딛고 21세기에는 더 나아간 인류의 비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개인과 공동체와의 조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비젼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보다 깊은 성찰과 성숙을 전제로 한다. ‘나’와 다른 ‘너’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함께 해야 할 ‘우리’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책임이 없이는 인류공동체의 새로운 비젼에 한발자욱도 다가갈 수 없다.
<참고글 4>
* 이숭규, “시민교육의 의의”, 열린사회 상근자수련회 취지문, 2002년
우리는 창립 이후 사회구성원의 발전수준이 사회발전의 수준을 규정하며 사람의 변화발전 없이 사회진보는 실현될 수 없다는 견지에서 사람의 변화발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의 변화발전'이란 1) 사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2) 이에 대해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정확한 판단능력을 갖추는 것과 함께 3)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동체적 협력관계를 이룰 수 있는 건전한 인격체로 변화하는 것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창립이래 이런 관점에서 다양한 대중사업들을 진행해왔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활동들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지역주민들이 공동체적 가치관을 보다 깊이 이해하며 스스로의 사회운영 능력을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변화를 중시한다면서도 그간 사람 자신에 대한 탐구는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사회제도적 측면에 대해서는 우리가 과거부터 많은 관심을 가져왔지만 사회발전의 주체인 사람에 대해서는 그 반의 반만큼도 관심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변화시키려면 그 대상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노력을 요구합니다. 특히 그 대상이 인간과 같이 복잡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변화를 위해서는 외부세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많이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 자신의 정신의 역동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그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환경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힘입니다. 어려운 사회역사적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은 정신의 힘이고 사회의 변화발전을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하며 노력하는 것도 정신의 힘이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고 그들과 운명을 함께 할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정신의 힘입니다.
맑스 같은 사람은 사회적 처지에 따라서 사람의 정신이 결정되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회제도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사람이라는 복잡한 존재의 정신과 실천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이념, 정치체제가 인류에게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고통을 준 것도 궁극적으로는 그것들이 인간에 대한 천박한 이해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 그리고 사람이 만든 물질적 문화적 재부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며 역사발전의 주체가 되는 것은 물론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사회의 발전을 원한다면 사람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우리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얻을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미신이나 사이비과학에 현혹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사람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얻는 노력을 소홀히 하면 우리 역시 미신적 사고나 관습적 편견에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타집단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 등은 모두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부족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 자신을 이해하고 또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욕망은 인간 내면의 강렬한 욕구입니다. 또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탐구의 노력은 사회발전을 목표로 활동하는 시민운동가들의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위대한 사회사상과 운동은 모두 인간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인간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면 우리의 시민운동은 사회발전에 별다른 기여를 하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참고글 5>
때문에 사회교육에 대한 시민운동의 역할, 공동체 형성에 대한 시민운동의 역할은 보다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이제 시민운동은 네가티브한 운동에서 포지티브한 운동으로 수동적인 역할에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역할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개혁적 방식에서 생활실천적 방식으로, 제도의 개혁을 넘어 사람들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민사회를 정치권력과의 관계에서 대립적 위치로 고정시켜 놓고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시민사회는 정치권력이 탄생하는 모태이며 시민 한사람 한사람은 정치권력에 대한 주권자이고 그 담보자이다. 때문에 시민사회는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해 바르게 성장토록 애정과 책임을 가지고 돌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발제문이 시민운동의 본질을 정치권력, 경제권력 등과 구분하여 사회권력, 문화권력으로 표현하는 것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를 사회권력, 문화권력을 추구하는 기관으로 상정하는 것은 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왜냐하면 사회문화영역은 정치영역과는 달리 그 구성원리나 운영원리가 권력관계를 기본으로 하지 않고 구성원 상호간의 조화와 협동을 보다 중요한 원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회문화운동에서는 누가 누구를 지배, 관리하는 권력적 개념보다는 교육하고 상호협력하는 지도,지원의 개념이 보다 바람직할 듯 싶다. 최근 시민운동을 언론에 이어 제5의 권부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발제문에서도 표현하고 있듯이 시민운동의 본질을 문화혁명(개혁)이라고 개념짓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현재의 시민운동만 놓고 보면 과한 얘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우리 인류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본다면 그러한 사명감을 갖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중략 ~
생활실천적인 운동,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잇슈의 개발과 실천프로그램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지역사회에서의 풀뿌리운동이 강조되고 있다. 시민운동의 발전방향과 관련하여 지역을 거론할 때 그것은 단순히 지리적 개념을 의미하거나 중앙과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지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지구화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하는 지역을 의미하고 근대적 자각과 발전에 토대한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서의 지역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겸허히 성찰하고 시대의 흐름을 확실히 이해하고 새로운 방향에서 성심으로 노력한다면 21세기의 시민운동은 사회발전에 분명한 전망을 주고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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