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6일 금요일

자원봉사활성화와 제3섹터-정부 파트너십(2000.2)


자원봉사운동은 21세기 시민사회운동이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분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원봉사는 근대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원리에 의해서 실현된다. 기존의 사회운영원리가 이윤동기를 매개로 철저한 ‘give and take'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자원봉사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회전체와 그 구성원들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다.

20세기 중반이후 점차 확대되고 있는 제3영역(The third sector)은 정부, 공공영역인 제1섹터와 기업, 시장영역인 제2섹터와는 달리 기부금과 자원봉사활동에 의해 운영되는 영역으로 21세기 인류의 행복과 발전을 좌우할 핵심적 영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자원봉사는 단순히 근대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과 문제점을 보완하는 비공식적 영역의 보조적 활동에 그치지 않고 미래사회를 주도할 새로운 생활양식을 예비하는 시대적 요청이 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인류의 지향을 한 마디로 표현해 본다면 ‘사랑’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진보운동이 실현하고자 했던 주요한 이념은 ‘자유와 평등’이었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인류는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그 결과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물질문명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확대를 통해 어느 정도 실현되고 정착의 단계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인류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발전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넘쳐나는 사회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어떠한 억압과 권위로부터도 자유롭고 어떤 차별로부터도 평등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한 성원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과 전체공동체의 발전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 그러한 사회야말로 인류가 꿈꾸는 이상사회이고 그 사회를 이루는 기본원리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랑’을 실천해가는 인간형으로 사람들을 변화 발전시키는 데 있어 자원봉사 활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원봉사는 또한 내가 사는 지역사회의 주인이 바로 나, 우리 자신이라는 주인의식을 갖게 하고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지역주민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는 지역사회에 대한 공동체의식과 연대 의식을 갖도록 한다. 공동체 의식이 형성될 때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주민들의 협동과 노력으로 예방되고 해결되며,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원봉사를 주요한 동력으로 하고 있는 제3섹터의 성장에 있어 제1섹터 및 2섹터와의 올바른 관계정립, 그 중에서도 정부와의 건강한 파트너십 형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국사회에서의 민간시민단체와 정부와의 관계는 87년 6월항쟁 이후 9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제3섹터 연구자 Van Til이 정립한 제3섹터 5대 모델의 구분에 따른다면 과거 권위주의적인 정권에서의 ‘민중주의적 모델’에서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성숙에 따른 ‘다원주의 모델’로의 전이가 한국사회에서의 제3섹터 모델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Coston이 분류한 제3섹터-정부 관계 유형 분류를 대입해보면 87년 이전의 억압, 대항형 유형에서 용역형 내지 경쟁형 유형으로 최근들어서는 공조형 유형으로 점차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제3섹터-정부 관계의 변화발전의 기저에는 최근 총선시민연대운동이 보여주고 있듯이 시민사회운동의 성장과 사회,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가 작용하고 있으며, 시민사회운동의 영역이 다양화되고 그 역할에 대한 인식 또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관계 형성도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공보처의 민주공동체의식실천사업을 시작으로 각종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를 유도하고 단체활동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계속 확대시켜왔으며,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위원회에도 시민단체대표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또 지방의제21과 같이 환경 등 국민공감대가 큰 사안에서부터 시민단체-정부-기업 3자간의 파트너십형성을 위한 공동위원회가 구성되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공동모금법(98년)의 제정, 민간단체지원법(99년)의 제정 등 제3섹터의 활성화를 위한 법,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가고 있다.

IMF국면이후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 있어서 제3섹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 분야에서의 민간단체들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지원방안이 마련될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 그동안 사회복지서비스분야에서 민간부문은 주된 제공자로서 정부의 역할을 대리해 왔으나,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의 기본구조하에서 타율적인 성장의 길을 걸어왔고 그 결과 비전문적인 행정공무원의 과도한 규제와 감독으로 민간비영리부문이 가지는 잠재적인 장점을 발휘할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 정부와 민간간의 정확한 역할분담과 민간자원동원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21세기 우리사회는 민주주의의 성장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 대립과 경쟁이 아닌 참여와 자치, 상생과 공조의 원리가 주도하는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 제3섹터와 정부간의 새로운 파트너십․ 형성의 방향은 무엇보다도 시민의 자발적 참여, 즉 자원봉사를 본질로 하는 제3섹터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관계형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의 제반 병폐들 - 범죄, 부정부패, 환경오염, 각 종 차별, 소외 등은 개인간의 경쟁을 본질로 하는 영리적 활동과 일방적 권력행사를 매개로 하는 공권력의 역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간 비영리 부문이 성장하고 새로운 사회계약관계가 형성될 때만이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열리고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원봉사운동 민․관 파트너십 형성을 위해 현재 제기되고 있는 구체적인 몇 가지 문제와 해결방향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무원, 특히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자원봉사운동에 대한 인식변화와 그를 유도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며 민간의 자율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역자원봉사센터 운영에 있어 관주도를 탈피하여 민간 자율적인 운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운동과 사회복지계를 막론하고 요즘 강조되고 있는 것은 지역운동, 지역사회복지이다. 이러한 경향적 흐름은 ‘풀뿌리공동체운동’이라는 하나의 지향으로 만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풀뿌리’는 운동주체라는 측면에서 민(民)이 갖고 있는 생명력과 자율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공동체’는 운동지향이라는 측면에서 상생(相生)과 공조(共助)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역(Community)이라고 하는 장에서 서로 만나고 형성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지역사회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나 그 핵심적 요소인 자원봉사활동의 증진을 위해서 지역자원봉사센터의 설립과 운영은 필수적인 것이고 중요한 일이다. 최근 몇 년간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자원봉사센터가 설치되고 자원봉사자 모집캠페인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자원봉사센터가 지방정부의 부설기관처럼 운영되거나 관련 부서의 직접 통제하에 있는 현상은 우려스러운 점이다. 또 민간역량의 준비정도와 무관하게 형식적으로 무리하게 설치되고 있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자원봉사센터는 자원봉사의 본래 취지대로 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관은 민의 육성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

자원봉사센터에 대한 지원체계가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자원봉사운동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 지역센터를 중심으로 다른 자원봉사센터들이 통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것이 행정관리의 편의를 위한 기재로 작동하지 않도록 자원봉사단체간 협의를 강화하고 각 분야별 자율성을 존중하며 기존의 해당 정부부처로부터의 계속적인 지원을 전제로 해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자원봉사활동지원법안이 민간차원의 꾸준한 제정요구와 행자부의 공감대 형성,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의원입법형식을 통해 성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우리의 의정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예처럼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자원봉사이벤트를 기획한다든지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의원자원봉사포럼 같은 것을 만들어 활동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올 4월부터 시행되는 민간운동지원법과는 중복되는 부분은 없는지, 필요하다면 일부 조항의 수정안을 준비하여 법제정의 설득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자원봉사운동의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위해 자원봉사전국센터의 설치와 운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재정을 포함한 대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국센터의 운영은 민간의 자율성에 맡겨야 하며 정치적인 외풍을 타지 않도록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원봉사 관리자 및 지도자의 교육 및 훈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직업적 전문관리자의 훈련도 중요하지만 자원봉사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이끌 수 있는 중간지도자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존 사회복지계 종사자뿐 아니라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훈련하고 시민단체 활동회원들과 일선 초, 중, 고등학교 교사들을 자원봉사 중간 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은 자원봉사자를 확대하고 운동을 일상적으로 조직하는 데 주춧돌이 될 것이다.

자원봉사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에 있어 우선순위는 운동주체, 선진그룹에 대한 초기투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경우에나 다 그러하겠지만 투자자는 투자 대비 산출의 효과가 가장 큰 종목에 집중하는 것을 바랄 것이다. 운동은 주체가 중요하다. 특히 비영리적 동기를 본질로 하는 자원봉사활동의 특성상 그 성장발전을 좌우하는 키포인트는 강한 목적의식성을 갖는 운동주체가 얼마나 튼튼하게 형성되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정부가 진정 21세기 우리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한 올바른 비젼과 장기적 안목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제3섹터의 창출과 성장에 주목하고 공익적 시민단체에 대한 우선적 배려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

  * 이 글은 필자가 한국자원봉사포럼 제18회 정기포럼 “한국의 자원봉사운동, 관의 역할 어디까지인가?”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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