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6일 금요일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길(1998.12/시대정신)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열린사회시민연합 기획실장 박홍순

1. 序, 기든스와 제3의 길

영국의 토니블레어총리의 이념적 스승이라고 일컫어지는 앤서니 기든스는 현대 사회학계 최고의 거목이자 영국이 배출한 세계적 석학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는 1970년부터 주로 영국 캐임브리지대학에서 가르쳤으며, 미국의 하버드나 버클리, 프랑스,독일, 이탈리아 등의 저명한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했다. 1997년부터는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의 총장으로 있다. 기든스는 ‘구조화(strucuration)'이론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현대성(modernity)을 둘러싼 서구의 논쟁에서 독보적 위치와 역량을 과시했다.

기든스의 최근 저서 [제3의 길]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국가 등과 같은 거시적인 문제를 보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즉 좌우 이념의 대립을 넘어 실사구시적 관점에서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이다. 1994년도에 출간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가 일반독자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개념들과 철학적인 제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제3의 길]은 현실정치를 이끌어가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현대사회에 대한 개방적이고 탄력적인 인식과 새로운 정치프로그램을 제시하기 위한 의도를 띠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구체적이면서 명료한 문체로 기술되어 있다.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지난 10여년간 서구에서 벌어진 사회민주주의 미래에 관한 논쟁에서 크게 부각된 다섯가지 기본적인 딜레마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글이다. 그것은 각각 범세계화(globalization), 개인주의(individualism), 좌파와 우파(left and right), 정치적 행위체(political agency), 생태적 문제들(ecological problems)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들은 현대성이 갖고 있는 부정적 현상, 즉 인간 소외, 관료적 지배, 폭력과 전쟁, 생태계 파괴 등에 대한 비판과 극복을 추구하는 새로운 개념인 성찰적 현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를 기초로 하고 있다. 성찰적 현대화는 단순 근대화(simple modernization)에 비교되는 개념으로 가든스의 최근 저작들에 일관되게 제시되고 있는 대안적 개념이다. 제3의 길이란 곧 성찰적 현대화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기든스가 제기한 다섯가지 주제 중에서 ‘좌파와 우파’, ‘범세계화’, ‘개인주의’ 문제를 중심으로 기든스의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앞의 두 주제에 대해서는 우리사회에서의 현실인식과 논의진전을 위해 생각해봐야 할 점을 간략하게 짚어보고, 마지막 주제는 새로운 보편가치의 모색이라는 관점에서 ‘개인과 공동체’ 의 문제에 대해 몇가지 시사점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2. 좌파와 우파, 그리고 우리사회에서의 의미

2.1. 서구유럽 좌파들의 새로운 문제의식
1998년 현재 서유럽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 또는 중도좌파 연합이 집권하고 있으며, 동유럽에서도 점차 현저히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이전의 레이건정부와 비교할 때 클링턴 정부는 명백히 좌파적이다. 그런데 이런한 좌파의 득세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과거 사회주의적 지향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전혀 아니다.
1989년 동유럽 공산주의의 붕괴는 변화하는 세계의 새로운 문제들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위해 과거와의 단절을 꾀하고자 하는 좌파정당들의 필요성에 더욱더 역동적인 힘을 부여했다. 서구유럽의 좌파정당들은 8,90년대에 걸쳐 경제적 생산성, 참여적 정책, 공동체 개발, 그리고 특히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통적인 좌파의 의제였던 ‘국가권력에 의한 자원의 배분 문제’나 ‘계급적 평등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관심의 영역에서 멀어졌다.
영국의 노동당은 기업 공유화 확대에 대한 종래의 약속을 폐기하였고 케인즈적 수요 관리는 명시적으로 포기되었으며, 노조 의존도는 약화되었다. 독일에서는 1989년 생태적 관심사에 역점을 둔 새로운 사회민주당 기본 강령이 채택되고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안전을 조화시킬’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개성과 연대가 대립적으로 놓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1991년 좌파 민주당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그밖에도 많은 서구의 좌파정당들은 공과 사의 균형, 노동 일수의 유연성, 교육 기회, 환경, 주택, 그리고 경제적 민주주의와 같은 ‘자유’의 문제 - 전통적인 ‘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 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였다.
이렇게 서구유럽의 좌파정당들이 새로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게 된 데에는 신자유주의적 조류에 대응하여 현실정치에서의 설득력을 얻기 위한 현실적 필요성에 기초하기는 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복지국가로 표현되는 ‘구식 사회민주주의’의 한계와 실패에 대한 반성과 극복이라는 동기가 작용하였다. 70년대 들어와서 복지국가의 한계는 명백히 노정되었다. 누적되는 국가의 재정적자, 비대해진 국가 관료제, 시민사회 기능의 약화, 국민의 노동 의욕 감소, 국가경쟁력 하락 등 서구 복지국가의 위기는 경쟁과 효율, 개인의 선택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대체되었다.
기든스는 철학적 보수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사고의 확장을 꾀하고 있기 때문에 우파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 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자율성과 창의성,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자기 향상, 성실성, 자기 규율, 의무, 봉사, 정의, 신뢰, 타인에 대한 배려 등과 같은 가치, 범세계화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공헌 등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그것이다. 하지만 기든스는 신자유주의의 모순과 관련하여 그 주요 구성요소인 ‘시장근본주의’와 ‘보수주의’가 갖고 있는 상호간의 긴장관계에 대해 주목한다. 보수주의 이념의 핵심은 ‘전통’의 지속인데 시장 사회의 역동성은 전통적 권위 구조를 훼손하고 국지적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파의 특징인 전통적 가족과 민족에 대한 헌신적 태도는 시장의 확대에 뒤따르는 새로운 위험과 불확실성의 증대, 그리고 범세계화 현상에 의해 필연적으로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기든스의 견해에 따르면 ‘구식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적,경제적 생활에서의 광범한 국가 개입,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 지배, 케인즈적 수요 관리와 코포라티즘(corporatism), 강한 평등주의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최소한의 정부와 시장 근본주의, 자율적 시민사회, 도덕적 권위주의와 경제적 개인주의, 전통적 민족주의와 개인자유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좌,우파 공히 단선적 근대화노선의 산물이며 양극적 세계체제에 귀속되어 있었고 생태계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의식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공통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2.2. 기든스의 제3의 길
기든스의 제3의 길은 구식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제3의 길이다. 그것은 80년대 이후 현존 사회주의(actually existing socialism)의 몰락과 함께 전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물결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이며, 70년대 이후 30여년에 걸쳐 근본적으로 변화해온 세계에 대해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사회민주주의를 적응시키고자 하는 사고와 정책 형성의 틀을 의미한다.
기든스는 제3의 길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프로그램으로서 ‘급진적 중도(radical middle)’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급진적 중도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확장시키는 과정이며 공동체의 복원과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정부는 그들과 동반자로서 활동하는 그런 정치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경제적 기반은 자유시장과 정부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는 ‘신혼합경제(new mixed economy)’이다. 기존의 혼합경제가 국유화와 사영화를 중심으로 논쟁이 전개되었다면 새로운 혼합경제는 탈규제와 규제 사이의 균형을 중시한다.
급진적 중도의 정치에 따른 ‘새로운 민주국가’는 근대적 국민국가와는 달리 외부로부터의 적이 없는 - 혹은 필요로 하지 않는 - 국가이며, 현대사회의 특징인 ‘인위적인 위험(manufatured risk)’에 대처하는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여야 한다. 사회투자국가는 “국민들에게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국가의 보호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인생의 주요한 전환기를 통과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물질적, 도덕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이며, 경제적 부양비를 직접 제공하기 보다는 되도록 사회교육 등과 같은 ‘인적 자본(human capital)’에 투자하고 시민사회의 자율성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사회투자 전략을 채택하는 국가이다.
기든스는 ‘적극적 복지’(positive welfare)를 주장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위기에 처한 복지국가를 개혁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이다. 기든스는 평등을 ‘포함(inclusion)’으로 정의하고 불평등을 ‘배제(exclusion)’로 간주한다. 포함은 넓은 의미에서 시민권을 의미한다. 기존의 복지국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동적이 되게 만들었다. 진정한 ‘포함’을 위해서는 현상적인 불평등의 제거보다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보험체계로서의 복지가 필요하며, 그것은 시민들의 생활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국가의 지난친 간섭을 줄이는 계획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3. 우리사회의 좌파와 우파
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의 좌파와 우파는 어떤 양상을 띠고 나타나는가? 우리사회에서의 보수주의적 기반은 매우 넓고 강고하지만 정치적 우파의 철학적 깊이는 매우 취약하다. 오랫동안 세계냉전구조의 최전선으로서 분단상태를 지속해온 우리사회는 그 주류적 분위기를 극우반공주의가 주도해왔으며, 이러한 반공주의에는 항상 권위주의적이거나 전근대적인 요소들이 밀접히 결합되어왔다. 우리사회의 정치적 좌파는 사회주의적 경향의 세력부터, 이념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지향을 갖지만 현실국가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도전하는 세력, 민족주의적 이념기반에서 친북적 성향을 띠는 세력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규정되어 왔다.
7, 80년대 권위주의적인 군사정권하에서 시장의 자유 - 기업활동의 자유, 국가규제의 철폐 - 를 주장하는 세력과 개인의 자유, 시민사회의 자유를 주장하는 세력이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하는 측면에서 공통성을 갖고 성장했는데, 이들이야말로 보편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우파의 형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70년대 유신치하에서 자유주의자(liberalist), 민족주의자를 기본으로 하여 형성되었던 재야민주세력은 80년대 중반이후 정치권력의 혁명적 전복을 고민하면서 이념지향성에서 막스레닌주의적 색채를 띠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우리사회에서의 좌파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쨋든 이들 - 시장자유주의자, 리버럴리스트,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등 - 은 암묵적 제휴를 통해 87년 국민항쟁을 성공으로 이끄는 기반이 되었고 87년 이후 이들 관계는 다시 벌어지기 시작, 90년대이후 상호 대립하거나 착종하는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평등’의 추구라고 하는 측면에서 시장자유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적 지향 세력의 대립을 주로 하는 것이었으며, 극단적 반공주의나 전근대적 요소들은 차츰 약화되었다. 90년대 들어와서는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을 갖는 급진적 개혁주의 세력이 사회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확보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사회에서의 좌,우파 구분은 UR시장개방 압력과 IMF경제위기를 맞으며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서구의 기준에서 보면 명백히 우파의 견해인 시장자유주의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우파인 재벌은 보수적 태도를 보여주고, 민족주의적 입장은 정치적 좌파에 의해 더욱 강하게 주장되며 이는 노동단체의 계급이기주의적 태도와 맞물려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한국에서의 좌파는 정치적 영역에서 더많은 급진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국가권력의 개입에 대해 반대하지만 경제나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더 많은 국가의 개입을 요구한다.

2.4. 좌파는 진보적인가?
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의 좌파는 인간과 사회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얼마만큼 진보적일 수 있는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좌파 - ‘자유’보다는 ‘평등’을 강조하고, 따라서 사회주의적 경향을 의미하는 - 는 아직 우리사회의 권력을 잡거나 기득권을 향유해 본 경험이 없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서구의 좌파가 갖는 한계 - 지나친 국가의 개입에 대한 강조, 관료주의화, 보수화 등 - 가 당장 현실의 문제로 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정책같은 경우 절대적 기준에서 본다면 서구에서 우파적 정책이 우리나라에서의 좌파적 정책보다 보다 급진적인 경우가 많다. 기든스가 말하는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이 최소의 복지제도,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한국의 현실에서 과연 어느정도의 유용성을 갖을 것인가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결국 좌파적 정책이 귀결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종착점은 복지국가적 모델, 국유화, 국가의 역할 확대, 집산주의적 경향 등등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갖는 잠재적 위험성은 이미 한국의 좌파 안에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와서 이미 근대의 역사 속에서 인류가 경험하고 검증된 문제를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적절한 예가 될지는 모르지만 박정희정권 이래로 우리가 추진해온 ‘돌진적 근대화’ - 국가가 정한 목표를 향해서 사회의 자원을 총동원하면서 고도 성장을 이룬 것 - 정책은 외형상 서구의 좌파적 정책이 갖는 특징인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란 점에서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은 거품과 부패, 비효율이 지배하는 경제구조이다. 또, 87년 이후 확대된 노동권은 우리의 경제현실에 비추어 생산성의 저하와 대외적 경쟁력을 위협할 정도의 실질임금상승과 노동시장의 경직화를 초래하였다.
이미 우리 사회는 정경 유착, 관치 경제, 만연한 부패와 같은 한계를 갖는 국가주도형의 경제구조, 그리고 경직된 노동시장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IMF사태는 이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이미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체질적 부조리는 곪을 대로 곪아서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점을 뼈저리게 인정해야 한다. 좌파적 성향은 장기적으로 예견되는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정책과 주장에서도 이미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IMF 구제금융하에서 경제개혁과 관련한 우리사회 좌파의 주장들은 계급이기주의, 대안없는 비판, 총체성 결여 등의 여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구조조정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자는 주장보다 대안없는 정리해고 반대 주장을 피고 있다. 또 급진적 재벌해체 주장도 당면한 경제현실에서 국가경제 핵심주체의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같은 현상이 우리사회 좌파들의 정책의 비현실성과경직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5. 쇄신을 위한 대화
기든스의 ‘급진적 중도’라는 개념이 보여주듯이 서구의 좌파는 현실경험 속에서 사회주의의 쇄신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이념적 지향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과 쇄신이 필요하다. 쇄신을 위해서는 먼저 ‘대화’가 필요하다.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그리고 증오와 적대에 기반한 이념 대결 풍조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감정과 대결의 전근대적 정치풍토도 청산되어야 한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의 산물인 노사간의 반목과 대립, 압축된 근대화 과정 속에서 해결되지 않고 응축되어진 세대나 남녀간의 갈등과 불신 등도 극복되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연한 공존의 파트너쉽이 필요하다. 상호 공존의 대화관계를 열어야 한다. 기든스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좌와 우의 대화, 그것은 절충이나 타협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인류의 근대화 과정에서 좌와 우는 자유와 평등에 관한 강조점의 차이였다. 지금 우리가 좌와 우의 만남과 대화를 얘기할 때 그것은 단순한 자유와 평등의 조화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평등의 조화라는 면에 머무를 때 그것은 임시적인 방편이 될지는 몰라도 새로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끊임없는 반복이며 근대성(modernity)의 매몰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의 역자인 한상진, 박찬욱 교수는 동양적 사고의 주요테마 중의 하나인 중용철학의 재조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매우 시사적이라고 생각한다.
“중용은 양극단을 포용하는 정치로서, 급진적으로 열려진 의사 소통을 전제로 하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 중용의 핵심은 여러 의견을 다 듣되, 합리적 중심을 택하는 데 있다. 이것은 개방적 공론 과정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교육과 합리적 토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3. 범세계화(Globalization)와 민족주의(Nationalism)

3.1. 범세계화 현상
기든스는 현대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로 범세계화 현상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새로운 정치프로그램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범세계화와 관련하여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인류문명의 새로운 도전으로써 범세계화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제3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구체적 담론의 하나로 ‘세계주의적 민족’과 ‘세계적 민주주의’를 과감히 제시하고 있다.
범세계화를 현실감있게 느끼게 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변화는 우선 세계시장의 확대와 관련되어 있다. 시장경제의 세계화는 근대의 발전과 함께 진전되어 왔고 국민국가범주를 넘어 시장이 개척되고 자본이 수출되면서 국제금융자본에 의한 제국주의 시대, 다국적 자본의 시대를 넘어 자본의 국가주권을 규정짓기 어려운 초국적 자본의 시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 시장경제는 구사회주의권 국가를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거의 예외없이 보편화되었으며, 특정 국가나 기업의 의사와 상관없이 범세계적인 연관성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특정 국가나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전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정책결정의 불확실성이 증대한 것이며, 세계경제를 규제할 새로운 장치를 합의해내지 않는다면 현대경제는 위기에 봉착할 지도 모른다.
현대세계의 금융시장에서 매일 환전되는 1조달러(미화) 중 오직 5%만이 무역이나 실질적 경제 거래와 관련될 뿐 나머지 95%는 핫 머니와 같은 투기와 중개 매매로 구성된다. 이러한 현상은 “가격 자체보다는 가격변동에 따른 기대가 투자에 대한 결정에 이르게 하고, 위기, 불규칙한 변동, 특정 국가들과 지역으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자본이 급속이 이동하는 것”과 같은 세계시장의 핵심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범세계화를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아서는 그 본질을 놓칠 수 있다. 범세계화는 동서냉전의 종식과 그에 따른 대규모 전쟁의 발생가능성이 현저히 저하된 것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두 개의 군사화된 권력 블록으로 나뉘어져 대립하던 세계질서는 이제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시장을 통한 자유경쟁이냐 국가권력에 의한 분배의 정의냐’하는 명분을 가지고 폭력을 동반한 정치적 경쟁과 군사적 대립을 지속할 필요가 없다. 현대사회의 대부분의 성숙한 나라들은 위와 같은 두가지 근대적 명제들을 이미 체제내적으로 소화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대의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찾고 있는 과정이다.
굳이 유엔의 역할이나 최근 유럽통합의 진전, 아세안, 나프타 등 각 지역별 국제 협력기구 등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세계적 규모에서 정치적 연관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또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지도 모르는 핵무기 등 대규모 살상무기의 통제관리와 해체, 집단적 안보체제의 새로운 구축 등 군사적 측면에서의 협력필요성이 날로 증대하고 있으며, 국가간의 국경문제나 주권의 존중문제도 국지적인 분쟁들이 발생하고는 있으나 점차 과거와는 달리 폭력이나 전쟁의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국제적 합의속에 고정되고 승인되어 가고 있다.

3.2. 세계주의적 민족주의
범세계화와 관련하여 기든스는 컴뮤니케이션의 혁명적 변화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세계적 규모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급속히 앞당겼으며 그것은 엄청난 규모의 정치적, 사회경제적 제도의 재구성을 일어나게 했다. 금융거래만 하더라도 현금이나 증권이 아니라 컴퓨터로 연결되는 전자 금융시장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통신위성을 통해 중계되는 CNN방송을 보며 세계의 흐름을 안방에 앉아서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든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인터넷을 통한 쌍방간 대화가 가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보편화되고 있다든지 하는 것은 범세계화가 어느새 우리의 생활 깊숙히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중해주고 있다.
기든스는 이러한 범세계화는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특성이고 세계적 규모의 컴뮤니케이션의 확산은 민주화의 확산을 가져온다고 한다. 즉, 범세계화는 개인의 자율성을 요구하고, 더욱 자기성찰적인 시민의 출현을 촉진하며 세계사회의 재정립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범세계화되는 질서 속에서 새로운 민족정체성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기든스는 역설한다. 다른 민족에 대한 적대감으로 형성된 과거의 민족개념을 극복하고 문화적 다원주의와의 공존과 결합을 통하여 ‘세계주의적 민족주의’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든스는 “세계화를 시장근본주의 - 신자유주의 - 에 맡겨둘 수는 없다”고 애기한다. 시장은 세계를 통합시키는 반면 그만큼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때문에 안정화 세력으로서 민족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데, 민족(주의) 역시 분열적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민족에 대한 세계주의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든스는 ‘세계주의적 민족주의’가 현대사회에서 현실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면서, 그 근거로 “양극화시대의 종언이 국가 주권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점”과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는 범세계적 시민사회가 등장한 점”을 주목한다. 그와 함께 범세계화 시대에 있어 ‘경계의 유연화’ 현상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지역들과의 유대가 심화되고 초국가적 집단들의 관여가 높아지면서 국민국가를 경계짓는 국경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세계주의적 민족주의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국민국가단위를 매개로 해서 형성된 시민권법의 변화가 필요하고, 다원주의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통한 문화적 변화가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3. 우리사회에서의 세계화와 민족주의
한편 우리사회에서의 세계화에 대한 담론은 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의 자유화, 초등학생들의 영어조기교육, 인터넷의 보급과 확산 등이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은 생활속에서 세계화문제를 피부로 실감하기 시작했고, 최근의 일본문화 개방의 수용과 스크핀쿼터제의 고수를 둘러싼 문화계의 움직임 등을 보면 세계화 추세에 대한 우리사회의 조심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 범세계화에 대한 성찰적 인식에 앞서 먼저 다가온 것은 다방면에서의 시장개방압력과 그에 대한 수세적 대응, 정권담당자들의 정략적 접근, 그리고 뒤이은 총체적 경제위기와 IMF 구제금융 사태였다.
시장개방압력과 IMF사태는 분명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를 관철시키려는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면적인 인식이다. 그것은 보다 전체적으로 보면 범세계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우리사회의 대처는 수세적이며 때로는 매우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기까지 하다. IMF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우리사회에서는 뒤늦게 합리적 시장질서에 순응하는 경제제도를 수용하기 위한 뼈아픈 노력이 경주되는가 하면, 또 다른 편에서는 금모으기나 국산품 애용운동 류의 민족주의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애국운동의 물결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또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마치 구한말의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맞서 쇄국을 주장하던 위정척사파를 연상케하는 극단적 주장이 계급적 이해와 맞물리면서 득세하기도 한다. 적어도 우리사회에서는 세계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기 보다는 수세적인 입장에 서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께 우리사회가 민족주의에 대해 과도한 애착을 갖게 된 것은 우리사회의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근대화역사는 민족주의의 고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의 20세기 전반부의 역사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민족적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피흘린 역사였고, 20세기 후반의 역사도 동서냉전의 최전선에 서서 주변나라들과 첨예한 긴장과 대립을 계속하면서, ‘돌진적 근대화’의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고취해 온 역사였다. 또한 아직도 서구의 기준에서 보면 민족주의 완성의 기초가 되는 통일의 문제가 현실의 문제로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통일의 문제는 그 성격의 복잡함과 함께 접근에 있어서 신중을 요하는 문제이다. 대중적인 통일운동의 주제가 되고 있는 이산가족상봉, 결합문제나 북한동포돕기운동의 경우, 그 기본성격을 보편적 시각에서 보면 인도주의적 성격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지만, 우리사회의 현실에서는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강한 정치성을 띠게 된다. 우리사회의 통일문제는 국민국가를 주도하고 있는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반외세주의, 대결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적’을 필요로 하여 존재하는 근대국민국가의 일반적 특성이기도 하다.

3.4.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 정립
우리사회도 이제 민족주의의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범세계화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능동적인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 범세계화는 탈중심화와 함께 진행된다. 기든스는 이에 대해 “범세계화에는 위로부터 오는 압력도 있지만 옆으로 퍼져나가는 효과,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힘도 작용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계적 연관성을 갖는 비정부조직들(NGOs)들의 역할은 최근 10여년동안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지고 높아졌다. 근대를 이끌어 온 국민국가의 힘은 점차 그 역할이 제한되거나 변화되기를 요구받고 있다. 이에 반해 시민사회에 기반한 지역화의 경향은 세계화와 맞물려 날로 확대되고 있다. 범세계화는 어느 한 국가에 의해 통제되기 어려운 복합성을 갖고 있고 그만큼 지역의 자율성, 시민사회의 재구성, 지역사회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범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현실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의 미국과 같은 현대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몇몇 중심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하지만 미국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다. 보다 많은 다른 나라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범세계화는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주도하는 중심국 외의 다른 지역의 문화의식과 주권을 활성화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범세계화의 진전 속에서 특정 문화나 집단의 이해를 노리는 패권적 경향에 대해 이들의 행태를 규제하는 세계적인 협력 체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부수적인 장치일 뿐, 보다 중요한 것은 범셰계화에 대한 능동적 이해와 수용 속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정립하는 것이 21세기를 맞는 진취적인 자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기든스의 말은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범세계화를 경험하는 인류의 첫 세대이다. 많은 문제와 부작용이 있지만 범세계화는 또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준다. 범세계적인 의사소통의 사회가 출현하고 있다. 그에 기반한 세계주의적 민족, 또는 시민사회가 가능하다.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떠나 세계의 다원성을 이루는 민족과 인종 또는 문화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전지구적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4.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로

4.1. 개인주의 세대의 등장
우리사회의 문화현상을 설명하면서 종종 X세대니 Y세대니 하는 말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이들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세대이고 개인주의에 충실한 세대이다. 이들은 남의 눈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기호나 취향을 존중하고 기성의 어떤 권위나 의무에의 복종을 거부한다. 우리사회에서 이들이 하나의 특성화된 집단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여년 사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시기는 87년 민주항쟁을 깃점으로 우리사회가 탈권위주의화하고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이다. 이들 세대는 고도성장을 통해 축적된 물질적 풍요를 기반으로 성장기에 궁핍과 곤란을 경험하지 않았다. 교복이 자율화되고 인터넷통신과 전자게임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며,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세계를 향해 개방된 시대를 살고 있다. 인생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10대후반, 20대초반의 시기를 이런 환경하에서 자란 이들 세대는 현대사회가 갖는 특징적 요소들을 체현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첫 세대들이다.
현대사회는 많은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제기하고 있다. 생태계의 보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문제, 전통의 붕괴와 가치기준의 불확실성, 가족의 붕괴와 성모랄의 혼돈, 세대간의 갈등과 노인, 청소년 문제,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인간소외의 극복 등등이 그것이다. 우리사회도 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의식주문제의 해결, 기아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전통적 권위로부터 개인의 해방, 온갖 억압과 차별로부터의 해방 등등의 근대의 과제들이 어느정도 해결되어 가면서 새롭게 드러나는 것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기준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고,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통해서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

4.2. 근대화 과정은 자유와 평등의 실현역사
근대화(modernization)의 과정은 이념적으로 보면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였다. 지금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주요강령 중 하나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의 결과 많은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현대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개인만이 강조되고 어떤 권위와 전통도 부정되는 사회, 사회적 연대감이 붕괴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불확실성과 인위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와 개인의 자유룰 만끽할 지는 몰라도 정신적 황폐화와 소외를 견딜 수 없어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지향은 개인 자유의 확대가 갖는 한계에 착목하여 사회정의와 연대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것은 어떤 계급적 차별이나 정치적 억압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연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평등’에 대한 강조가 좌파의 특징을 이루는 공통적인 문제의식이었다.
그런데 근대의 ‘평등’이란 본질적으로 자유의지를 갖는 개인들간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였다. 좌,우파간의 현실정치에서의 대립과 갈등은 결국 개인의 자유와 자유로은 개인간의 평등을 보장하는데 있어 국가권력의 개입에 대한 정책의 차이가 주요한 쟁점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자유주의자들도 평등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유주의자들은 평등의 문제에 대해 국가개입 등에 의한 인위적인 조정을 거부한다. 기회의 균등을 통해 불평등의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현상적으로는 심한 경제적 불평등이 나타날 지 모르지만 의지와 능력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걸맞는 분배와 사회적 지위를 누림으로써 ‘능력에 따른 분배의 정의’가 보장된다면 그것이 곧 근대의 의미에서 평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이해가 근대의 합리적 계몽주의가 도달한 자유와 평등개념에 보다 부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4.3.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현대사회가 봉착한 개인주의의 모순과 인간소외현상의 해결을 위해서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에 대해 전통적인 선입관을 떨치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공동체라고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은 가족, 이웃, 지역사회, 민족 및 국민국가, 인류 등등을 들 수 있다. 공동체는 단순히 자유로운 개인들의 양적인 집합을 넘어서는 질적으로 새로운 차원의 개념이다.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한 개인으로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성을 체현하고 있는 사회적 존재, 류적 존재로서 이해하려 한다면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기든스도 이 문제에 대해 착목하고 있다. 기든스에 따르면 제3의 정치는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새로운 관계, 즉 권리와 의무에 대한 재규정을 모색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기든스는 ‘책임 없이 권리 없다(no right without responsibilities)’는 명제를 새로운 정치의 주요 모토로 제시하였다. 기든스는 이제까지 좌파가 권리를 무조건적인 권리로서 취급하는 경향이 있어왔다고 비판하면서 전통적인 좌파의 집산주의를 버리고 개인과 공동체간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것을 주장한다. 그것은 개인주의의 팽창과 함께 사회에 대한 개인적 의무의 확대가 이어져야만 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실업수당은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할 의무를 수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든스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권위에 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기든스는 ‘민주주의 없이 어떤 권위도 없다(no authority without democracy)’라는 명제를 내세운다. 전통과 관습이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권위를 확립하는 유일한 길은, 민주주의를 통한 길이며, 개인주의가 반드시 권위를 잠식하는 것은 아니고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기반하에서 권위가 다시 형성될 때 개인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기든스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통한 능동성과 참여의 확대가 새로운 권위 확립에 어느정도 기여할 것인가? 그것만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조화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사회원리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을까? 그것은 공정한 룰이 지배하는 제도의 확립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측면에서의 접근은 한계가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는 무엇보다도 공동체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공동체성원으로서의 자각, 공동체와의 일체감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공동체와의 일체감이란 개인을 배제한 전통적 권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집단적 권위나 전통에 의존하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에의 헌신과 봉사는 자발성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것은 공동체의 일부로서의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자각을 할 수 있는 인간인식능력의 발전에 기초한 것이다. 때문에 기든스가 이야기하는 현대사회의 특징인 성찰성의 증대와 민주주의의 민주화 - 상호성과 대화의 강조 - 는 개인과 공동체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가는 과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근대가 만들어놓은 고정된 의미의 공동체 개념 - 개인과 대립되는 집단성을 의미하는 - 을 넘어설 때만 가능하다. 구식 사회주의가 강조하는 계급이 갖는 집단적 개념이나 사회제도를 만들고 지휘해가는 권력으로서의 국가라는 측면에서 공동체를 바라볼 때, 공동체와 개안간에는 끊임없는 긴장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개인이냐 집단이냐, 시장이냐 국가냐’ 하는 식의 순환론적인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제 우리는 개인과 공동체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 근대가 만들어논 함정에 빠지지 말고 새로운 미래적 개념으로서의 공동체 - 개인과 조화를 이루는, 그리고 필연적으로 개인의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 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4.4. 해방의 정치에서 삶의 정치로
근대성(modernity)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과 관련하여 기든스가 제시하고 있는 정치적 패러다임의 전환은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해방의 정치에서 삶의 정치(life politics)로의 전환이다. 근대에 있어서 사회정의의 실현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완전히 실현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에 들어와서 평등 문제의 해결을 통한 사회정의의 추구는 항상 진보의 주요한 주제가 되어왔다. 평등이나 사회 정의에 대한 사상은 좌파 견해의 기초를 형성하였고 그런 의미에서 좌파는 해방의 정치를 신봉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든스는 이제 해방의 정치에서 삶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기든스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에서 삶의 정치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직면한 도전에 대해 주어진 전통이나 자연스런 관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이든 집단적 차원이든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선택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정의한 개념이다. 그것은 현대사회의 범세계화, 탈전통화, 생태적 문제 등 새로운 환경하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해방의 정치가 생활에 기회를 주는 것,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면, 삶의 정치는 생활의 결정과 관련된 선택, 정체성, 그리고 상호성의 정치를 의미한다.
기든스는 같은 책에서 ‘대화민주주의(dialogic democracy)’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삶의 정치를 풀어나갈 새로운 민주주의 기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독단적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토론과 의견 교환을 통해 능동적 신뢰가 동원되고 지속되는 개인적 관계의 발전”을 가정한다. 기존의 민주주의가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구하고 한다면 대화민주주의는 기존의 권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논쟁이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공동영역을 창출하는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때문에 새로운 정치는 ‘자조집단(self-help groups)’의 활동과 시민사회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든스의 이러한 강조는 한단계 진전된 정치의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의 정치가 정치공학적 의미, 즉 제도적 개선과 변혁을 둘러싼 사회 제 집단간의 쟁투와 조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반면, 삶의 정치는 인간삶의 보다 근본적이고 생활적인 영역들까지 정치의 대상을 확대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자신의 자주성에 접근하고 있으며,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의 상호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사람의 주체성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넘어선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와 통일’, 그리고 ‘지배, 대립, 갈등, 경쟁’을 극복한 ‘사랑, 헌신, 협력, 봉사’ 등과 같은 새로운 보편가치의 창조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로서 적절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4.5. 인류공동체에 대한 자각과 성찰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서 기든스가 주는 중요한 시사점 중에 또 하나는 범세계화에 대한 인식이다. 범세계화는 ‘계급’이나 ‘국가’와 같은 근대가 만들어놓은 범주를 뛰어넘어 전개되는 새로운 실제 현실이다.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오랜 기간 동안 인간들 사이에서는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이 벌어져왔다. 그것은 개인과 개인사이에, 집단과 집단사이에 폭력을 불러왔고, 때로는 종족간에, 민족간에, 국가간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루게 하였다. 금세기 들어 인류는 2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대규모 살상과 파괴를 경험했고, 경직된 이데올로기의 명분으로 반세기의 냉전을 거쳐왔다. 동서냉전이 종식된 지금, 범세계화의 진전 속에서 인류는 새로운 경험을 예비하고 있다. 그것은 국민국가를 넘어선 인류공동체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다.
범세계화는 공동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에서 질적 비약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근대의 역사에서 종교와 같은 관념적 차원이 아닌 현실상의 가장 상위의 공동체는 국가였다. 근대의 국민국가는 그동안 국경선을 경계로 타민족, 혹은 국가와 대립경쟁하는 공동체로서 이해되어왔고 강요되어 왔다. 그동안 공동체는 때로는 개인을 규제하고 구속하는 것으로, 때로는 더 큰 적과의 투쟁으로 개인들을 동원해내는 수단으로 작용해왔다. 공동체는 개인에게 충성심을 요구하고 개인의 자주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쉽게 인식되어왔다. 이제 범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공동체가 화해와 협력의 마당으로, 그러한 개념으로 실제화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가고 있다. 범세계화되는 현대사회의 제 문제에 대한 대응은 그러한 현실에 대한 단순한 적응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전인류적 차원의 연대, 인류공동체에 대한 인식의 심화 등의 차원으로 한층 발전된 사고를 필요로 하고 있다.

4.6. 지역사회공동체와 시민사회의 역할
범세계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지역화를 동반한다. 범세계화의 진전은 지역사회공동체(community)의 복원을 가져오고 있다. 근대에서 지역사회공동체는 쇠락하는 전근대적 유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범세계화 시대의 지역사회공동체를 거론할 때 그것은 전근대적 의미에서의 복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통신의 혁명, 인간의식과 능력의 발전은 세계와 호흡하고 함께가는 지역사회, 닫혀있고 고립되어 있는 공동체가 아닌, 열려있고 연대하는 공동체를 가능케하고 있다. 기든스는 “범세계화는 동시에 ‘아래로 내려 뻗기’도 한다. 그것은 새로운 수요와 지방적 정체성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한다”라고 말한다. 기든스는 “점점 더 자기 성찰적으로 되어 가는 (현대)사회는 높은 수준의 자치 조직이 특징”이며, ‘공동체적 동력’은 “이웃, 마을, 더 큰 지방의 사회적,물질적 쇄신을 위한 실천적인 수단”이라고 규정하면서 “이제 공동체라는 테마는 단순한 추상적 슬로건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의 근본적인 주제”라고까지 단언한다.
실제 최근의 미국이나 영국사회에 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탈물질주의적’가치를 목표로 하는 ‘소집단’들은 상호부조의 유대로 묶여가고 있으며 풍요로운 시민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는 증거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또 제3부문, 즉 자원봉사활동이 지난 40여년간 꾸준히 확장되어왔으며 각종 자조집단과 자원봉사그룹, 시민단체들은 전통적인 집단들을 대신하여 지역사회공동체의 발전을 주도해가고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지역화폐’ - 자원봉사에 소요된 서비스시간을 화폐단위로 계량하고 컴퓨터 시스템을 매개로 하여 이를 상호간에 교환, 유통시키는 시스템 - 와 같은 ‘적립식 자원봉사 프로그램(service credit)’은 지역사회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소외된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범세계화와 지역화의 진전은 차츰 국민국가의 역할을 변화시키고 있다. 국가는 이제 자신이 독점하고 있던 권력을 탈정치화된 범세계적 영역으로 이전시켜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공동체의 발전을 위하여 공공영역 - 이는 광장, 공원, 시민회관 등과 같은 공공시설도 포함한다 - 을 개방하고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지원해야 한다. 민(voluntary secter)과 관(goverment secter)과의 관계는 이제 지배-피지배의 관계나 대립-갈등하는 관계가 아닌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상호 대화하고 협력하는 파트너쉽 관계로 발전하여야 한다.
공동체적인 발전은 국가권력의 성격과 역할을 변화시키는 것과 함께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심세력도 변화시킨다. 근대는 정치의 시대였고 근대적 의미의 정당들은 국가권력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계급 내지 이해집단들의 이념적, 정치적 결사였다. 앞으로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시될 것이다. 이미 NGOs(non government organizatioms)들의 역할과 영향력을 무시하고 범세계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특히 환경생태에 관한 문제나 인권에 관한 문제 등은 세계적 규모에서 미래사회로의 전진을 NGOs가 선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출규모면에서 GDP의 6.3%, 고용면에서 전체 고용인구의 6.8%를 이미 비영리조직(NPO, non profit organization)들의 활동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지역적 차원에서도 강화되어야 한다. 풀뿌리 주민조직들의 할발한 움직임은 우리사회 미래에 대한 작지만 소중한 기대이다


5. 結, 새로운 보편가치의 모색을 위하여

기든스의 제3의 길은 근대성(modernity)을 뛰어넘어 새로운 보편가치를 모색하려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서구의 좌파적 대안들이 갖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고 쇄신의 필요성을 제기한 점은 우리가 다시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고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해준다. 국민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확대되고 있는 범세계화 현상에 대한 고찰은 아직도 근대적 범주인 민족주의적 과제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의 시야를 인류공동체적 시각으로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새로운 개인주의’에 대한 제기는 전통적 권위로부터 해방된 현대사회의 인간들이 이기적 인간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발전에 책임을 다하는 인간으로 접근하도록 하며, 삶의 정치로의 패러다임의 전환과 대화민주주의의 제기는 근대적 정치개념을 극복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국민국가의 역할변화에 대한 문제게기는 이상적 미래사회을 향한 진보적 주체형성과 관련하여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하지만 기든스의 이론은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적응이란 측면에 아직은 멈추어선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든스는 현대사회의 범세계화 현상이나 불확실성, 인위적 위험, 가족, 성의 문제, 생태적 문제 등을 포착하고 전통적인 좌,우파의 논리를 재해석하여 그 한계를 넘어서는 급진적 중도의 길을 제시하려 하였으나, 그 철학적 바탕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의 근본주제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듯 하다. 제3의 길이 좌,우의 많은 비판자들로부터 실용주의적 절충이라고 지적받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또 기든스의 탐구는 포스트모던적 범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이기는 하나 아직도 그 한계에 갖혀있다는 느낌이다. 현대사회의 불확실성과 가치의 상대성, 다양성의 수용을 강조하고 인간이성의 합리성을 회의하는 대목들이 그러하다.
근대의 계몽주의, 합리주의는 부정될 것이 아니라 계승, 발전시켜야 할 인류의 자산중의 하나이다. 현대사회의 변화와 현상에 수동적 적응을 넘어서 인류사회의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능동적 창조가 요구된다. 그것은 세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전면적 인식을 필요로 하며, 개인과 공동체문제에 대한 보다 진일보한 연구와 논의를 필요로 한다. 보다 성찰성이 높아진 현대사회 인간들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서, 인간성의 끊임없는 계발이 지속될 것이라는 낙관을 갖고 ‘대화’를 통한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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