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5월을 생각하며
-- (시민운동 일각의 반이성주의적 경향의 위험성에 대해)
최근 김지하 시인이 지난 1991년 <조선일보>에 기고했던 분신 관련 칼럼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는 <실천문학> 여름호에 실린 소설가 김영현씨와의 대담 ‘대립을 넘어, 생성의 문화로’에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라리고 그 때의 상처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생각보다 더 아프게 새겨진 것 같아(...) 유구무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칼럼의 본래 의도가 “한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 크다는 생각에서(...) 생명의 원리에 입각해 운동을 다시 개편해 볼 용의가 없느냐는 것을 물었던 것‘이라며, “원래 제목은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였으나 신문사의 편집과정에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이 붙었다”고 해명하였다. 또 그는 말썽 많은 <조선일보>에 칼럼을 발표한 것, 흥분해 있는 학생들에게 권유문 식으로 쓰지 않고 날가롭게 쓴 점, (정권 등에) 빌미로 활용되도록 한 점 등을 당시 자신의 잘못으로 시인하였다.
김 시인이 당시의 칼럼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힌 것은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제를 지금 다시 거론하는 것이 새삼스럽긴 하지만, 김 시인이 지적한 데로 당시 5월, 이른바 분신정국에서 거리에 나섰거나 친구의 죽음에 통곡했던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는 그 칼럼의 구절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아직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영원히 용서하지 못할 만큼 증오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도 당시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면 몸서리쳐지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전민련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 중의 한 명은 젊은 나이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불귀의 객이 되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동료의 자살을 도운 교사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오랜 감옥생활을 해야만 했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난 이제 차분히 생각해보면 김 시인의 말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질풍노도와도 같이 몰아치던 그 치열했던 민주화운동의 시기에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 깊이 고민하고 배려하였었던가? “총체적 사회관계의 변화, 정치권력 담당주체의 변화, 사회구성원의 이익과 권리의 분배체계의 변화를 지향하는 집합적 행동의 묶음”인 사회운동의 목적 실현을 위해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을 수단화하지는 않았었는가?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애국적 대의를 위해 개인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행위를 기리고 따르려는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자유로운 개별 인격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단 하나뿐인 생명조차 미련없이 던져서 자신의 신념과 지향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종종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순교자, 애국열사 등으로 부른다. 이러한 모습을 대할 때 사람들은 그 신념이나 이념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한 인간의 결단과 삶의 자세에 대해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경건함에 재를 뿌리거나 한 인간의 결단에 대해 모독할 때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순전히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한 개인이 속한 시대와 공동체의 사상과 분위기에 영향받고 또 영향을 주면서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당시 민주화운동에 관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적든 많든 마음 한 구석에는 남모르는 회한과 죽은 자들에 대한 빛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우리사회의 8,90년대 민주화운동을 지배했던 사상적 경향은 근대사회의 대표적 이데올로기인 애국주의와 맑스주의에 근거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상경향은 다분히 개인보다는 전체를, 사람들의 변화성장보다는 사회의 시스템과 권력의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이런 사상경향은 필연적으로 실존의 문제, 인간의 문제를 소홀히 다루거나 무시하게 되며 개인에게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게 만든다. 필자의 지금 생각으로는 이러한 근대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극복되어야만 할 사상경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당시 김 시인이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당시 민주화운동권을 지배하고 있던 사상경향에 대해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던 동기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더구나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김 시인은 칼럼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준 점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있는 마당에 과거의 일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대립을 넘어 상생의 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너와 나 사이의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고 차분하게 합리적인 토론으로 옳은 길을 찾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싯점이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김 시인이 생명사상을 주장한 시기를 전후하여 90년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근대의 계몽주의적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넘어서 보려는 이러저러한 사상적 경향들이 생겨나고 실제 현실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경향은 일률적으로 한 묶음으로 애기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생태주의로 대표된다고 말 할 수 있다. 근본적 생태주의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인위적 작용에 반대하는 경향을 띠는데 개발반대와 자연보전운동, 생태공동체 건설, 유전자 변형 식물에 대한 반대, 수돗물불소화 반대 등 다양한 현실운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들은 대체로 사회발전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 속에서의 인간의 이성적 역할을 회의하는 특징을 띠고 잇다.
김지하 시인의 생명사상이 동양사상의 뿌리에서 새로운 모티브를 발견하고자 하면서 단군숭배 등 복고적이고 전근대적인 사상과 결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인간에 대한 존중이 아닌 생명에 대한 존중은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한국사회운동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붕괴 이후의 공허를 대치하려는 여러 노력들의 일환으로 생각된다. 특히 결정론적인 이데올로기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의 폐해를 비판, 극복하려는 실천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잇다. 또 이러한 사상경향은 근대의 제반 문제점에 대해 성찰적으로 접근할 수 잇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긍정성을 갖는다. 하지만 근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면적 비판은 근대에 들어와서 인류가 이룩한 큰 성과인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까지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더 나아가 불가지론이나 허무주의로 귀결될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동안 소홀히 하였던 감성적 측면을 중시하는 것은 좋은나 자칫 지나치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부정하는 반이성주의에 빠지기 쉬우며 이는 근대 이후의 사상적 발전에 대한 전면적 거부, 다시말해 중세로의 회귀로 귀결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인류역사의 진보 자체에 대한 부정이고 사회발전에 있어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 인간의 가치에 대한 존중을 포기하고 인간을 자연세계의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는 앞의 김지하시인에 대한 화해의 필요성이나 뒤의 반이성주의적 사상경향에 대한 판단 등을 다른 사람들에게 애써 주장하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겸허하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깊이 귀기울여 듣는 것, 즉 경청(경청, mindful listening)이란 사람에게 변화를 강요하기보다는 변화의 씨앗을 그 마음에 가만히 뿌려놓는 것과 같다. 이것을 ‘예언자적 경청’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제 우리 사회에 예언자적 선포(prophetic speaking)도 중요하지만 예언자적 경청(prophetic listening)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새로운 인식이 요구되는 시대다“라는 말에 합리적 지혜가 담겨져 있다고 동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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