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센터, 민간주도단계로의 이행을 시작하자.
주민자치센터가 설치되고 운영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이제는 관주도 단계를 벗어나 민간주도의 단계로 이행해야 할 시기이다. 애당초 정책입안단계에서도 동단위, 나아가 통반단위까지 일률적으로 관이 책임지고 통치해가는 낡은 관성을 깨고, 적어도 읍면동단위와 같은 근린생활권에서는 주민들에 의해 조직되는 자치위원회가 책임을 지고 기존의 동행정을 대신할 수 있는 주민자치센터를 운영하도록 하자는 것이었고, 여러 가지 여건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관주도단계->민관합동단계->민간주도 단계로 순차적으로 이행해가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지난 5년간의 주민자치센터 운영과정에서의 성과와 한계들을 살펴보면 주민자치센터의 민간주도로의 이행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전국의 주민자치센터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조사분석의 결과는 아직 보고된 것이 없지만, 매년 개최되는 주민자치센터 전국박람회나 여타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조사나 평가결과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활성화된 우수센터들의 공통된 특징은 주민자치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서의 자율성이 높은 곳, 자원봉사자가 많고 센터내 주민동아리, 관내 주민자생단체 등과의 연계와 협력이 잘 되는 곳, 자치위원회 간사나 자원봉사자 등의 형태로 상시적으로 센터운영을 담당해갈 수 있는 실무인력이 있거나 동장이나 담당공무원의 마인드가 주민친화적이고 자치센터 관련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곳, 지방자치단체차원의 적극적 관심과 지원이 있는 곳 등을 들 수 있다. 또 비활성화된 센터의 경우 대부분 주민자치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이 과거 동정자문위원회의 재판인 곳, 주민활동의 조직이나 자생단체와의 협력보다는 실적보고위주의 형식적인 강좌프로그램 개최에 그치고 있는 곳, 센터시설을 만들어 놓기는 했으나 운영이나 활용에서 주민접근성이 떨어지는 곳 등이다.
이러한 분석에 근거해보면 주민자치센터의 활성화, 곧 본래의 목적인 주민자치기능과 지역공동체 형성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자치센터의 독립된 운영을 보장하고 그를 위한 지원과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주민자치위원회를 비롯한 각 주민자생단체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시민사회를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주민자치기능을 강화하고 주민들의 자율적인 자치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여 민간주도의 기반을 다지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복지나 문화서비스 기능을 위주로 행정의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검토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것은 현재의 주민자치센터가 본래의 목적이나 명칭과 상관없이 문화나 복지관련 프로그램운영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주민자치위원회의 구성이나 운영실태가 주민자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현실분석에 일정정도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여 그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도 않은 채, 드러난 현상을 근거로 또 다른 수단적인 접근을 통해 기능적으로 문제의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단견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초기단계에서 주민자치센터 관련 담당부처인 행정자치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동기능전환이라는 행정기능 재편의 관점에서 주로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지, 정작 기존의 행정기능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주민자율적 자치기관인 주민자치센터의 육성과 활성화에는 별다른 정책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전국적으로 동기능전환 및 관련 조례와 센터시설설치가 일정정도 완료된 시점에서 행정자치부 관련부서의 예산편성이나 정책우선순위에서 주민자치센터가 사라져버리고, 이에 발맞추어 각 시도에서의 담당공무원의 역할도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급해진 것은 주민자치센터 운영이 몇 년차 지내면서 현실적인 센터운영의 각 종 문제점과 주민의 요구에 직면한 각 기초자치단체였다. 자치기능의 강화나 지역공동체의 활성화와 같은 전혀 새로운 요구에 기존의 행정경험과 시스템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거나 형식적인 대응만 할 수 밖에 없는 현장 담당공무원들로서는 상급행정기관의 정책상, 예산상의 무관심은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민간주도’가 행정의 무관심과 무책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권한의 조정이고 관계의 재정립이다. 주민들 스스로가 이니셔티브를 갖고 자신의 지역사회에 대한 경영에 참여하고 책임을 행정과 함께 나누어지자는 것이다. 행정은 더 고도화되고 정밀해져야 하며 책임성은 다른 형태로 구현되어야 한다.
주민자치센터의 민간주도단계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기존 동행정체계로부터의 독립성 확보이다. 그것은 애초 주민자치센터 설치의 기본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첫째, 주민자치센터의 운영주체로서 주민자치위원회의 권한과 책임, 그리고 법적인 뒷받침을 명확히 해주어야 한다. 자치위원회의 구성권한을 기존의 동장위촉방법에서 주민들의 자율성과 대표성이 보장될 수 다른 방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주민직접 선출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주민추천, 주민단체 추천-> 선정위원회 구성과 청문-> 자치단체장이나 의회의장의 위촉의 방법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법적 지위와 관련해서는 별도입법이나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자치위원회에 독립적인 법인격을 부여할 수 도 있고,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상의 단체규정을 준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둘째, 센터운영에 필수적인 전문실무인력을 독립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기존의 동사무소 직원이 자신의 행정고유업무 이외에 부가적인 업무로서 자치위원회의 유지와 활동지원, 시설의 관리, 프로그램의 기획 및 추진과 같은 업무를 담당해나간다는 것은 초인적인 정력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일정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전문인력을 계약직이나 기타의 방법으로 배치하여야 한다. 일본의 공민관이나 서구의 커뮤니티센터에는 공히 3~4명의 전문인력들이 배치되어 일하고 있다.
셋째, 프로그램의 운영과 지역공동체활성화사업에 필요한 재원이 지원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원의 방법은 신중해야 한다. 행정의 계획과 필요에 따라 필요한 실적사업을 수행하는 식으로 예산이 쓰여서는 안되며, 주민자치센터 스스로의 판단과 계획에 따라 예산이 집행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방식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일정시기까지는 기존의 민간단체보조금 집행의 방식을 준용해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별도의 독립적인 기금의 설치를 통해 프로젝트 공모나 목적사업별 지원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물론 공적 기금의 보조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기금의 마련과 수익사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유도해야 하고 매칭펀드 등의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민자치위원들을 포함해서 주민자치센터 운영에 참여하는 인력들을 교육, 훈련하고 일상적인 컨설팅을 통해 그 활동과 사업을 촉진할 수 있는 전문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 설치되고 그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기관은 관련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되어야 하고 중앙단위와 각 지역별로 설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급적 민간기관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민관합동으로 설치하고 운영할 수 도 있다. 또 다소 효율성에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만 기존의 유사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이 협력하여 그 기능을 대신하는 방법도 있다.
이상에서 제시한 방법 외에도 다른 선택의 방법도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주민자치위원회 등 읍면동단위의 주민자치조직이나 주민공동체 활성화를 크게 목적에 두지 않을 경우 시군구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 각 센터를 기존의 유사기관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능적으로 재편하고 행정이 관련전문가를 채용하여 직영하거나, 적절한 민간단체나 기관에 위탁경영토록 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에는 기존에 조직된 주민자치위원회와 센터간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안이 심도깊게 연구되어야 하고, 이러한 경우에도 가급적 ‘민간주도’의 취지 및 방향, 지역시민사회의 활성화와 거버넌스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관련민간단체에의 위탁 등이 장려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민간주도단계로의 이행조차 또다시 중앙정부의 일률적이고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되어서는 그 본래의 취지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적인 방향과 흐름의 유도, 그리고 그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재정적 환경의 조성과 지원은 중앙정부의 몫이다. 하지만 그 실현의 주체는 민간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치분권의 지속적 추진,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거버넌스의 실현이라는 대세의 흐름과도 맞고, 민간주도의 본래 취지와도 부합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능력이 부족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역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 지역시민사회의 자율적 역량이 미약하다는 현실진단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책임 하에 다양한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 다만 중앙정부는 민간주도로의 이행이라는 일관된 정책방향을 유지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우월한 정책적, 재정적 수단을 활용하여 선택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목표를 실현키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것이 주민자치센터 설치과정에서 보여줬던 것과 같은 한정된 재원의 나눠주기식 배분 - 그 예산은 모두 동사무소의 리모델링과 시설설치비로 쓰였다 - 전국적으로 자구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조례와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의 운영과 같은 현재의 모습 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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