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시민사회의 창조성에 투자해야 한다.
1. 대선공약에서 실종된 지역의 자율성과 책임성
17대 대선과정이 미래 비젼과 정책에 대해 서로 겨루는 장이 아니라 과거 흠결에 대한 진위공방으로 점철되고 현 정부의 실책에 대한 반사이익에 의존하였던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에는 잘 노출되지 않았지만 주요 후보들의 정책공약들이 예산계획을 포함한 매니페스토 형식으로 준비되고 책자로 제작되어 서점에서 판매되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그나마 진일보한 모습이다. 각 후보의 정책공약들마다에는 여러 분야에 걸쳐 고심의 흔적들이 담겨져 있어 그 숨은 노력에 경의를 표하게 되기도 하지만, 지역분야의 공약에 이르면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여야의 유력후보 누구를 막론하고 지역공약들은 각 시도별 또는 권역별로 맟춤형의 개발공약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무슨 시도지사 선거의 정책공약을 모아놓고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무수한 그 공약들의 실현성여부도 따져봐야겠지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방자치와 분권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지금 시대에 중앙정부가 나서서 미주알고주알 지방마다의 발전청사진을 전부 그려주고 그를 책임지겠다고 한다면 지방의 자율성과 책임성은 대체 어디 가서 찾아야 하나 하는 점이 안타깝게 만든다.
지방자치가 부활되고 지역주민의 손으로 직접 지방정부를 구성하여 운영해온지도 벌써 15년도 더 되었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한 목소리가 특정 정파의 정치적 필요성에서가 아니라 시대적 요청으로, 사회발전의 불가피한 요구로 표출되어 왔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오랜 중앙집권적 발전전략의 관성 속에서 정치도, 행정도, 기업도, 시민사회도 중앙의존적인 문화에 익숙하고, 지역에는 변변한 자원과 역량이 축적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비록 그렇다 할 지라도 우리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책임 있는 위치에 서고자 한다면 당장의 즉자적인 요구를 조합하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전체적인 시야에서 지역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역의 혁신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 지역혁신은 우리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투자
지역혁신의 과제는 단지 우리나라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볼 때도 근대화를 일정정도 성취한 나라에서는 보편적으로 제기되어 추진되고 있는 과제이다. 그것은 근대국가들이 사회발전의 일반적 전략으로 추구했던 중앙집중형 성장전략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그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들을 치유하고 새로운 사회발전의 동력을 찾고자하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또 세계화가 확산되고 정보의 유통속도가 빨라지면서 중앙정부의 상대적 비중이 감소하고, 사회의 전반적 유연화와 개성화, 자율성과 창조성에 대한 요청이 커지고 있는 것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추세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를 현실화시켜나갈 수 있는 능력을 높이는 데 지역혁신의 초점이 있다.
그렇다고 지역혁신이 고립된 각 지방마다 자생적으로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면 해결될 성질의 문제는 당연히 아니다. 지역 차원에서도 지역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고 각기 특성에 맞는 새로운 발전전략에 대한 의욕을 불러 일으켜야 하지만, 국가경영의 측면에서도 사회전체의 지원인프라를 형성하고 지역특성화를 통한 실험전략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획득하며, 특히 지역사회의 혁신역량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측면에서 적극 지원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보다 복잡한 요소들을 고려하여야 한다. 즉 단기간의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사회가 갖게 된 특성 이른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측면을 감안하여 상대적 저개발과 불균등의 문제해결과 지속적인 성장과 새로운 삶의 질 형성이라는 과제를 함께 해결해가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시병행적인 문제해결을 하면서도 모두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우리사회 발전의 비젼에 대한 구성원간의 합의와 공유를 바탕으로 갈등을 줄이고 창조적 활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기존의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 극복해야 할 문제점과 한계는 무엇이고 지속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점은 무엇인지를 가려보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지역관련 정책을 접근하는 실용적인 관점이 될 것이다. 그동안 지역관련 정책들의 실질적 귀결들을 보면, 중앙이 갖고 있는 권력과 자원을 지방으로 수평적으로 이동하고 분산하는 데 그치고, 새로운 혁신과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연결시키는 데에 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점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지방분권이 기존의 권력과 자원 나누어주기에 그쳐서는 안 되고, 새로운 국가사회발전의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확대는 평균주의의 추구(하향평준화)가 아니라, 더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하기 위한 공동체의 선택이고 진보로 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동체의 파이를 키워가는 분권, 질서 있는 분권, 앞으로 나아가는 분권이 되어야 하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역혁신이란 지역의 현대화이고 미래에의 투자이다. 지역의 현대화란 변화하는 환경에 적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고 체질의 개선이다. 다양성의 시대, 지식정보화의 시대. 세계화의 시대에 맞는 사회운영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화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주체들의 자발성과 창조성, 책임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고, 정보의 네트워크화와 주체들의 파트너십 형성이 필수적이다.
성공하는 지방분권, 지역혁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첫째, 지역에 인재가 모이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정보와 경험이 축적되어야 한다. 셋째, 장애요인의 제거(효율적인 환경의 조성)요구에는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넷째,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고 운동적 역동성을 가져야 한다.
3. 산업경제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성장이 함께 가야
다음으로 그동안의 지역정책들은 산업경제발전전략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왔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사회발전전략이 결여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역혁신은 산업경제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성장, 양 측면 모두에서 추구해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당면한 지역혁신의 과제를 첨단산업단지의 유치나 그를 위한 인프라 구축정도로 귀결시킨다면 그것은 과거 개발 년대에 중앙의 재원을 지원받아 토목건설 위주의 지역개발을 추진하였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수많은 대규모 지방공단들이 조성되었지만 지역민들의 생활과는 관련성이 떨어지고 그나마 비효율적인 중복투자와 공실률로 부실한 재정적자의 누적으로 귀결되었던 경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또 지방의 산업발전이 그 지역의 주민들의 삶과 무관하게 되고 오히려 지역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교육과 복지, 환경과 보건, 주거와 문화 등 지역주민들의 삶을 규정하는 사회발전 영역에서의 새로운 성장과 혁신이 병행될 때만이 지역혁신전략은 비로서 총체성을 담보하게 된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병행이나 보완이 아니라 올바른 결합을 통한 새로운 시너지의 창출과 성장 동력의 확보로 이어져야 하고 또 그럴 때만이 지속적 발전이 가능해진다. 질 높은 교육과 문화, 쾌적한 생활환경을 갖추지 않고서야 공공기관이나 IT산업을 유치하고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이 지역에 정주토록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또 지식기반산업의 활성화가 그것을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시민사회의 지식문화수준의 향상과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 없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지역의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안정적 영업과 노동자들의 소비가 없고서야 어떻게 내수시장의 확대가 가능하겠는가? 결국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투자는 산업경제발전을 위한 선순환적 투자인 것이다.
또 최근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지역복지시스템을 어떻게 갖추어나가야 하는가 하는 과제가 중앙정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중요한 현안문제로 되고 있다. 그런데 점증하는 주민들의 문화, 복지 수요에 부응하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복지서비스전달체계를 정비하고 정부의 대응능력을 높여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와 함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지역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주민자치조직을 활성화하여 민간의 지역복지해결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소득이 높아지고 삶의 질을 추구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문화, 복지적 요구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수준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요구들을 행정기관에서 다 감당할 수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는 정부가 담당해야겠지만 그 외에 선택적인 성격이 강한 서비스일수록 민간기능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 많은 선진국에서도 각종 커뮤니티 센터들이 활성화되어 민간과 지자체가 협력하여 지역사회의 여러 공공서비스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 필자는 일본 북부큐슈지역 지쿠고강 유역의 지역만들기(地域づくり)현장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지쿠고강은 후쿠오카, 오이타, 사가, 구마모토라는 네 개의 현에 걸쳐져 있는 강으로 이 강유역의 생활자가 구성하는 네트워크 운동인 ‘지쿠고 강 통째 그대로 박물관(筑後川まるごと博物館)’사업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것은 지쿠고 강 유역 전체를 하나의 큰 박물관으로 보고 상류지역에서 하류지역까지의 자연, 풍토, 문화, 산업, 유적 등을 체험, 교류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탄생했다. 이 사업은 지역의 NPO(Non-profit Organization)가 유역 주민의 의사를 구체적인 안으로 제시하고 행정기관이 그것을 실행해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는 지쿠고 강 유역권의 각 지역에서 여러 활동을 전개하는 그룹이나 단체가 다수 참가하고 있으며, 유역권내의 종합대학인 구루메 대학의 학술적인 협력을 받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지역만을 잠깐 일견해보면 상류지역의 쿠쥬(九重)에서는 다목적 댐건설을 포기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길을 택하는 대신 일본에서 가장 길고 높은 다리를 건설하여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그 수익으로 최고의 노인복지지역을 건설하였다. 또 산간마을인 오구니마치(小國町)에서는 지역자원인 삼나무를 이용한 조형미 넘친 건축물을 지어 지역이미지를 만들고 민간재단이 중심이 되어 그린투어리즘대학을 운영하여 일본전역과 아시아에까지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었다. 중류지역의 히타(日田)시에서는 전통거리를 복원하여 지역상권의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었고, 구루메(久留米)시 한 교외지역에서는 과수, 묘목 생산 농가와 동네 예술가들이 향토의 환경 보전과 문화 진흥, 그리고 관광농업의 육성을 결합한 야마즈토의 길(山苞の道)이라는 매력있는 마을만들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또 강유역의 중심도시인 구루메시의 구도심가에서는 쇠락해가는 중심상권의 활로를 찾기 위해 구매력 있는 은퇴고령자들이나 장애인들이 움직이기 편하도록 아케이드를 개보수하고 ‘시니어정보플라자’를 운영하는 등 타운모빌리티(town mobility)활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모든 활동들은 다양성을 갖고 있지만 모두 그 지역에 삶의 기반을 갖고 있는 주민과 NPO들이 주체가 되어 전개되고 있었고, 인위적인 행정구역의 벽을 뛰어넘어 동일 생활문화권안의 연대와 정체성(Identity)을 추구하고 있었다. 또 방문하는 지역마다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지산지소(地産地消)의 슬로건이 보여주고 있듯이 산업경제활동의 결과가 지역사회내로 환류되고, 지역의 산업과 환경, 문화, 시민사회가 서로 연계되고 풍부화될 수 있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4. 시민사회의 역할변화와 지역사회파트너십
지금 세계는 통치(Government)의 시대에서 협치(Governance)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국가중심의 복지국가모델, 시장주도의 작은 정부 모델 모두 한계에 봉착했다는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것이고, 삶의 질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시대에 맞는 사회발전전략을 취하기 위한 것이다.
근대 산업경제와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정착되면서 또 지방자치와 분권이 확대될수록 점점 커지고 높아지는 주민의 요구 즉, 삶의 질 향상 요구에 대한 대응에서 기존의 시스템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정부의 능력은 부족하고 경직된 관료시스템만으로는 유연한 대응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민영화를 확대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맡길 때 시장 기능만 갖고서는 공공성에 대한 책임을 방기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사회발전의 주체측면에서 본다면 제1섹터 정부영역의 관료주의와 제2섹터 시장영역의 이기주의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3섹터 시민사회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동력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
시민사회의 구성원들도 이제 고립되고 수동적인 개인이 아니라 책임과 권한을 함께 안고 참여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는 능동적 시민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곧 시민사회의 재창조와 활성화가 중요한 싯점이다. 제3섹터 시민사회의 재창조와 활성화의 구체적 현장은 시민들의 생활세계영역인 지역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된다. 거버넌스(Governance)의 기초는 마을마다 거리마다 존재하고 또 만들어가야 할 주민들의 자발적 공동체와 행정과의 적절한 파트너십 형성이고 이를 조정하고 촉진하고 도와줄 수 있는 NPO들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부터이다. 정부는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그 능력의 신장을 통해 사회적 통합발전의 주체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관이 함께하는 공동생산의 경험과 영역들을 확장해가야 한다.
지역혁신이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우리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한다면, 지역사회운영주체들이 유연하고 창조적이며 자율적이고 책임성이 강한 새로운 질의 주체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지역혁신이 가능키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행정적 조치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시민사회의 자발적 움직임과 만날 때만이 혁신의 동력을 공급받게 되고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다. 지역혁신전략은 지방과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혁신운동을 통해 전국적으로나 일률적으로 실시하기 곤란한 개혁을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 차원에서 실현하자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또 산업경제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성장이 함께 가야만 그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만큼 민간시민사회의 활성화를 꾀하고 지역사회의 건강한 파트너십을 형성,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이번 태안 앞바다의 기름 유출사고를 둘러싼 대응과정을 보면 민간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이 지역사회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데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절실히 느낄 수 있다. UN과 EU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해외전문가들도 1~2개월 걸려서 할 수 있는 방제작업을 불과 일주일 만에 해낸 것은 자원봉사의 놀라운 힘이라고 입을 모았다. 재난재해에 대한 대처뿐만이 아니라 지역공동체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풀뿌리로부터의 운동, 즉 마을만들기운동과 주민자치운동, 평생학습운동과 자원봉사운동 등은 지역혁신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민간시민운동이 지역혁신의 주체적 동력으로 존중받고 그 경험이 올바로 결합된다면 지역주민들로부터 나오는 자발적 의지와 능력을 지역혁신의 에너지로 전환시켜낼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경직된 관료시스템의 행정조직을 가지고서는 접근해가는 데 한계가 있다. 여기서 주민들의 자발적 공동체, 지역사회의 전문적 NPO들이 파트너로서 실질적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환경과 여건 제공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제3섹터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선행되고 가버넌스적 시각에서의 관계형성이 중요하다. 그와 함께 실질적으로는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물적 설비와 활동재원, 필요한 정보와 지식과 같은 인프라의 건설을 위한 행정적 책임이 중요하다. 같은 공익적 활동을 하면서 관료조직이 비효율적으로 소비하는 막대한 재정지출에 비한다면 이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투자가치가 높은 것이다. 또 그것은 날로 심각해져가는 고학력실업문제를 고려할 때 헌신적이고 전문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들이 자기 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5. 지역혁신역량의 강화를 위한 쌍방향의 노력
지역혁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를 추진해갈 수 있는 주체가 잘 형성되어야 한다. 지방정부 혁신 및 공무원 역량의 강화, 지방의회의 효율화와 대표성 강화, 특성화된 지역산업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창의적인 기업인과 지식노동자의 육성 등은 혁신주체의 형성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다. 하지만 지역시민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NPO와 전문 활동가들이 없이는 지역혁신의 주체는 완성되지 않는다. 또 시민참여의 구조를 형식적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파트너십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거버넌스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방정부는 시민사회와의 협력경험을 체계적으로 쌓아가야 한다. 앞으로 국정을 담당할 사람들은 지역시민사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방행정과 시민사회간의 파트너십을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구체적인 정책들을 몇 가지 열거해보면 행정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공공시설물의 개방과 활용을 용이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역마다 NPO지원센터를 설치하여 정보, 교류, 정책연구, 인큐베이터, 시설과 자원 제공 등을 체계화한다. NPO활동가들의 충전과 교육을 위한 편의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신규 활동가들의 양성을 위한 대학 등의 협력을 이끌어낸다. 지역공동체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공동출자하는 기금을 조성하고 독자적인 운영을 보장한다. 일상생활권(동네, 아파트 등)단위 주민조직을 활성화하고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제고하여 행정보조기구에 그치지 않고 지자체의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자치센터 등 지역주민들의 커뮤니티시설 운영에 있어서 민간전문가의 조력을 받도록 하고 공공서비스 영역의 민간 위탁 확대, 공동생산의 경험을 축적한다. 주민이 참가하는 마을만들기활동을 활성화하고, 지역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뱅크, 정보와 경험의 제공, 컨설팅, 리더교육 등을 위한 전문지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정부당국의 노력과 함께 시민사회운동의 주체들이 기존 NGO의 관성을 넘어서는 일정한 인식의 전환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먼저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를 협의의 시민단체 개념을 넘어서서 제3섹터 일반으로 확대해야 한다. 특히 지식생산과 교육 분야가 중요하고, 사회공익을 추구하는 제반 민간 영역으로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또 NGO는 복지나 분배 영역뿐 아니라 생산과 성장 영역에도 관심 갖고 기여하여야 한다. 또한 참여는 권리일 뿐만 아니라 책임도 뒤따른다는 점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다음으로 ‘경제하려는 의지와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NGO에 참여하는 주체인 일반시민들의 삶 자체가 경제생활을 위주로 이루어진다. 단체나 기관의 운영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공동체, 지역사회 자체가 경제생활과 지속적 성장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비정부기구(NGO)이기도 하지만 비영리기구(NPO)이기도 하다. 시민활동의 측면뿐만 아니라 시민사업의 측면도 발전시켜야 한다. 시장경제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기업부문에 대한 파트너십을 개발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독자성과 자율성의 문제도 유연하고 다양하게 사고해야 한다. 대립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파트너십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고 제3섹터 영역의 특성과 장점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왜 독자성과 자율성이 필요한지에 대해 상대방을 잘 이해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지역혁신이라고 하는 중요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이 과제는 단기간에 쉽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사회의 혁신은 그 지역에 뿌리박고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의 생각과 삶이 혁신될 때만 가능하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지역사회에서의 풀뿌리시민운동과 그 속에서 길러지는 주민자치의 역량이다. 지역사회의 새로운 산업발전전략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도 그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지역의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그것의 요체는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자주적 의지와 무한한 창조력을 결합시키는 것이고 그를 위한 새로운 상호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사고방식과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미 이전 시기부터 배태되고 새롭게 성장해 온 자산을 근거로 할 때 현실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 판단에 의해 너무 쉽게 과거의 성과나 축적물들이 무시되고 그 위에 새로운 것들을 급조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지역시민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마을만들기 등 풀뿌리시민운동의 경험과 역량들, 평생학습과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한 지역차원에서의 노력과 경험들과 그 과정에서 형성된 인프라들, 주민자치위원회, 전문적 NPO 등이 그러한 것들이고 이것들을 옳게 결합시킨다면 지역혁신을 위한 밑으로부터의 기반을 형성하는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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