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리더십에 거는 기대
열린사회시민연합은 서울에 여섯 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강 이북에 위치한 세 곳의 지역시민회가 매우 활발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번 총회과정을 거치면서 공교롭게도 세 곳 모두 여성대표가 탄생하게 되었다. 북부시민회의 김진숙 대표, 동대문시민회의 김문자 대표, 은평시민회의 최순옥 공동대표가 그들이다. 세 분 모두 오랜 활동과정을 통해 회원들 속에서 신임이 두텁고 왕성한 활동력과 훌륭한 지도력을 보여주신 분들이다.
외부에서 보면 여성단체도 아닌데 대표가 왜 모두 여성일까 하고 일견 의외의 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단체의 활동내용이나 조직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창립이후 열린사회는 나눔과 사랑이 넘쳐나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주민생활과 밀착된 풀뿌리시민운동을 전개해왔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지역사회의 참여로 함께 보살피는 열린학교 활동, 이웃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어린이도서관 활동, 가족이 참여하는 저소득 소외계층 무료집수리활동, 부모역할훈련 등 성찰과 소통능력을 함양하는 시민교육 활동, 마을단위, 아파트 단위에서 주민이 참여하여 함께 마을을 가꾸고 공동체문화를 만들어가는 삶터가꾸기 활동, 동단위의 주민자치센터가 진정 주민들의 자치요람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 등등이 우리 단체가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과정에서 그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생활인들이 참여가 점차 늘어났고 그 중에서도 여성회원들의 역할과 비중이 높아져왔다.
여성들의 역할이 높아진 것이 단지 풀뿌리시민운동을 하는 우리 단체만의 사정일까?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사법연수생 중 판사나 검사임용이 예정된 여성은 전체(190명)의 53.7%인 102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우위를 점해왔던 분야에서도 성비가 역전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남녀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시스템이 많이 개선된 점도 있지만, 실력만 있으면 더 높은 지위와 역할이 주어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특히 교육부분에서 성취도가 높은 여성들이 남성을 능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 줄을 세워보면 열에 여섯, 일곱은 여학생들이라는 것이 세간의 이야기다. 오죽하면 같은 학교 학생들의 내신성적 산출에서 여학생과 남학생을 별도로 구분해서 등급을 매긴다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여성총리에 여성대통령후보까지 정치지도자들도 여성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정치인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미국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후보 제1위인 힐러리 클런틴 여사는 너무 잘 알려져 있지만, 이미 현직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성정치지도자만 하더라도 부지기수이다. 아일랜드의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인 매리 매클리스,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웬만한 선진국은 다 여성정치인들이 이끌고 있다. 선진국뿐 아니라 군사독재와 게릴라전 등 남성문화가 지배적이던 남미에서도 요즘 여풍이 거세다. 남미 10개국 중 에콰도르,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에서 여성장관들이 대거 배출되고 있는데, 전통적인 금녀의 영역으로 치부해오던 경제와 내무, 국방과 치안 등의 분야에서 이들 여성장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 여성장관들은 과거 군사정권의 잔재를 청산하고 사회안정을 유지하는 데서 단호함과 슬기로움을 갖고 대처하고 있으며, 남미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에 유명했던 여성정치지도자에 비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성지도자들의 특성은 큰 차이가 있다. 인도의 소니아 간디 총리나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처럼 남성인 남편이나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대중의 지지를 얻거나,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처럼 오히려 더 남성적인 장점을 내세워 리더십을 인정받은 것이 과거의 유형이었다면, 지금은 여성 특유의 가치, 즉 엄마처럼 부드럽고, 돌보고, 이해하는 여성성이 더 중요한 가치로 각광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 결과로 하원의장이 된 낸시 펠로시 의원은 처음 의사봉을 잡던 날 손자들을 데리고 나와 할머니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선거 과정에서도 “나는 다섯 남매를 키웠고,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라고 하면서 ‘빵을 굽는 전형적인 엄마의 이미지’를 내세워서 지지를 받았다. 남성 못지않게 강인하고 터프하게 보이려고 애써 온 미국의 여성 정치인들이 이제는 모성을 앞세워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올 4월 치루어질 프랑스 대선에서 여성대통령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 후보도 선거 기간 내내 “네 아이의 엄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환경장관, 가족장관 등을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어린이·가족·교육의 가치를 강조했다. 루아얄의 상대 진영은 선거운동 기간 “아이는 누가 키우냐”며 조롱을 보냈지만, 이는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이렇게 여성성이 중시되는 현상은 정치 분야만이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요구되는 보편적인 리더십의 특성이 되고 있다.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리더십, 즉 감성리더십, 서번트(Servant)리더십 등의 특성은 여성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러한 리더십은 모두 탈권위주의적이라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일방적 지시나 통제가 아니라 조직원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스스로 몸을 낮춰 봉사하는 리더가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또 과업성취 중심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며 구성원들의 역할을 높이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리더십 유형이다. 현대 사회는 정보화 사회이다. 창의성과 혁신이 요구되고 있고 미래에는 그것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친화력과 탈권위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키는 여성형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은 필연적이기까지 하다.
열린사회시민연합 조직문화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을 존중하는 열린공동체의 실현’ 우리가 열린사회를 창립하면서 내걸었던 비젼이다. 우리는 높은 이상을 추구하지만 과거의 운동단체처럼 당위를 앞세워 사람들을 억압하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열린 자세로 우리가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과 나누며 함께 배워갈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 활동에 참여하는 주민들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들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비록 우리의 능력과 노력은 부족했지만 지역사회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생활인들이 회원의 대다수를 이루고, 여성성에 기반한 새로운 리더십들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자부심이다.
세분 여성 대표분들의 선출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1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단체에 활력을 주고 새로운 비젼을 개척해 나가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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