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4일 화요일

한국시민사회 성숙을 위한 과제(2007.6/열린사회임원토론회)

한국 시민사회 성숙을 위한 과제 



1. 한국 시민운동의 당면과제

한국사회의 정치는 시민사회의 토대 위에서 진전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국가 수립 이후 5공화국까지 권위주의 국가에서 지내오면서 국가가 먼저 이루어지고 다음으로 경제 및 사회가 국가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역순의 과정을 밟아왔다. 시민사회를 양육하지 못한 채, 국가가 오히려 사회와 부르주아를 양육해 온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제3세계의 부르주아는 서구의 부르주아와 달리 탄생과정의 모태가 시민사회가 아니라 국가라는 점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편으로 국가에 의하여 양성된 부르주아는 권위주의 체제에 포섭되기는 하나, 반발하기도 하였다. 또 한국사회에서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 형성은 서구와 같이 역사적 단계를 전체사회가 밟아오면서 다원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군부와 관료, 재벌을 중심으로 한 체제의 비대화에 대하여 민주화세력의 도전 즉 정치적 공간에서 상징능력이 가장 두드러진 세력들이 서구의 공공권역과 상응하거나 그 과정을 축약한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는 노력과정에서 생겨났다.*
 

이른바 87년체제의 성립으로 한국사회는 저강도민주주의(low intensity democracy)를 넘어 고강도민주주의(high intensity democracy)의 단계로 이행하기 시작했고, 개발도상국형 사회갈등구조와 선진국형의 탈근대성을 띤 생활세계의 과제가 중첩되어 표출되는 복잡성을 띄게 되었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성장과 분배의 문제, 북한과 미국 문제 등을 둘러싼 계층별, 세대별, 이념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시민운동은 정치권에 대한 견제와 비판 기능, 나아가 대안적 정치기능을 수행해왔다. 그것은 한국 정치권이 전근대적인 정치사회구조 개혁의지의 부족, 정치부패행위의 만연과 국민의 불신 등으로 한국사회발전의 장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을 전후로 하여 시민사회의 강력한 정치개혁운동, 정치권의 자구적 노력이 진행되면서 정치의 투명성과 전문성 제고, 대의체계의 개선 등 거시적으로 볼 때 정치사회 정상화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시민운동은 과거 계급운동과 변혁운동의 연장선에서 사회주의적 좌파의 확산에도 역할하여 왔다. 계층별, 세대별, 이념별 갈등이 심화되는 현실조건에서 그 한 축을 담당, 심화시킴으로써 사회발전의 역기능을 초래할 위험성도 갖고 있다. 또 기본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미성숙과 사회적 갈등조정과 중재 문화가 부재한 상태에서 포퓰리즘이 강화되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상존한다. 


한국정치의 선진화를 위한 과제는 기본적으로 정치사회가 책임질 일이다. 물론 시민사회에 근거한 정치사회의 발전이라는 서구근대민주주의형성의 일반적 경로로 보나 한국사회 민주화의 역사적 현실적 특성으로 볼 때, 시민사회의 정치적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성을 명분으로 여론지지를 획득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중적 태도는 벗어나야 한다. 또 정치에 있어서 이해대변(그것은 계층적, 직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이념이나 가치관 등도 포함한다)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양성의 공존과 공정한 절차에 의한 경쟁과 타협이 필요할 뿐이다. 정치적 활동을 하려는 주체(시민단체 포함)들이나 기존의 정치집단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정치환경(법, 제도, 문화 등)을 조성해야 한다.

이제 한국 시민운동은 일정기간 한국정치의 선진화를 촉진, 지원하면서도 점차 자신의 역할을 발전된 민주주의사회에서의 일반적 형태인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여타 섹터(정부와 기업섹터)와의 새로운 협력관계(거버넌스) 형성으로 중심축을 옮겨가야 할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정부와 시장에 대한 견제, 비판기능과 보완 ,협력 기능의 균형, 사회적 갈등중재와 합의된 기본가치의 선도 기능, 시민여론의 형성과 참여, 시민들의 생활세계영역에서의 삶의 질 향상, 세계시민사회와 국제협력 등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과제로는 자원봉사와 기부문화 확산, 민주시민교육과 노블리스 오블리주 문화의 형성, 지역시민사회의 활성화와 풀뿌리NGO인프라 확충, 시민사회단체의 책임성, 투명성, 전문성, 지속성 확보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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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시민사회 활성화 과제"


2. 자발적 부문(Voluntary sector)과 지역공동체(Community) 활성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딜레마는 곧 현대문명의 진로와 관련된 딜레마이다. 개인의 자유, 자율과 공공선의 실현 사이의 모순을 넘어서 조화와 상생의 새 길을 개척해가야 한다. 그 길은 모든 개인과 모든 사회가 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또 발전의 주체가 되는 길이다. 그를 통해서 물질적, 경제적 풍요와 함께 정신적, 관계적 발전을 꾀하는 길이고, 선택의 자유와 참여의 기회를 누림과 함께, 정의와 공정성을 추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유연성, 창의성, 자율성, 공동체성, 자발성이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오늘 날 시민사회는 국가나 시장이 갖지 못한 새로운 인적, 물적, 정신적 자원을 갖춰나가고 있다. 바로 자발적 부문이라는 특성에서 나오는 힘이다.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자발성에 근거한 공익성의 추구, 이것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열쇠이다. 사람들의 지식문화수준, 기술발전과 생산력의 증대, 민주주의의 발전 등 사회의 전반적인 자율화 과정이 높아지고 있다. 시민사회의 두 가지 축은 권익과 책무의 측면에서 형성되는데, 사회발전에 따라 권익주창(Advocacy)에서 자원봉사(Volunteering)로 점차 기능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한국사회도 기본적으로 그러한 추세에 있다. 


이에 따라 지역사회(Community)의 공동체 운동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가 처한 많은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받지 않고도 공공선의 실현이 가능할 수 있는 시민문화의 형성, 곧 공동체성의 체득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구체적 삶의 현장, 시민들의 생활세계영역인 지역공동체에서부터 비롯된다. 개개 시민들이 커뮤니티활동의 경험 속에서 참여를 통한 학습이 이루어지며 그것은 곧 볼런티어링(Volunteering)이기도 하다. 자발적 부문의 지역사회에서의 실천, 그것은 공동체만들기(Community Building)에 다름 아니다. 지역사회를 살기 좋은 공동체로 만들자는 것은 물리적, 경제적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하드웨어적 측면뿐 아니라 공동체적 인관관계의 실현이라는 소프트웨어적 측면도 포괄한다. 또 그것은 지역사회의 운영에 있어 행정과 주민이 동등한 자격으로 파트너가 되어 함께 기획하고 함께 실천해가는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모형을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측면에서도 공동체(community)는 중요하다. 특히 풀뿌리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접근해보면, 직접민주제적 요소의 결합으로 대의민주주의의 부패를 치유하고 한계를 보완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뿐 아니라, 그 실현의 과정에서 공동체적 요소의 강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내용을 심화시킨다. 즉 풀뿌리민주주의에서는 면대면(face to face) 민주주의, 소규모 자치 공동체의 경험 등을 통한 공동선에 대한 과정적 이해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주민의 직접참여제도 도입이라는 ‘결과’만을 보지 말고 지역주민들의 자치역량을 강화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 풀뿌리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균형 잡힌 지역사회, 공동체조직의 활성화, 양보와 타협 같은 공동체 규범의 형성이 중요한데, 이는 지역사회 내부에 공동체적인 지향과 경험이 축적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3. 풀뿌리공동체운동의 목적과 의의


열린사회시민연합이 지난 10여년간 추구해온 운동은 풀뿌리공동체운동이었다. 그것은 남은 음식물 자원화 사업, 동네하천 살리기 운동, 생태기행, 환경교실 등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푸른 생활환경의 실현운동, 저소득실직가정결연운동, 무의탁노인집고쳐주기, 저소득가정방과후학교 등 주민참여형 지역복지운동, 어린이도서관, 청소년자원봉사단, 공동체시민교육 등 자원봉사와 시민교육을 통한 공동체의식의 확산운동, 주민자치센터참여사업, 삶터가꾸기 등 주민자치를 통한 지역공동체 형성운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열린사회시민연합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듯이 일반적으로 풀뿌리시민단체들의 사명과 활동의 목적은 주민들의 권익을 옹호․대변(advocacy)하며,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참여(participation)를 통해 주민들의 정치력을 비롯한 제반 영향력의 증대(empowerment)를 꾀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다 성숙한 참여와 자치, 주민들의 공동체의식 성장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근본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민운동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활동방식이 요구되고 그를 촉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풀뿌리공동체운동형의 시민단체들은 아래로부터의 운동, 즉 삶터에서, 가족과 이웃과 지역사회를 돌보고 함께 하는 운동을 중시한다. 

그 특징들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첫째, 지역주민들의 생활상의 문제, 삶터에서 발생하는 문제로부터 운동의 소재를 찾는다. 둘째, 단기적 잇슈가 아니라 지속적인 실천활동을 통해 성과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셋째,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식변화, 생활양식의 변화를 추구한다. 넷째, 주민 스스로가 실천과정에서 역할을 찾도록 한다. 다섯째, 문제해결을 위해 지역사회내의 각종 자원을 발굴하고 연계하고 동원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여섯째, 자원봉사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활용한다. 일곱째, 해당사안뿐 아니라 지역사회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불러 일키도록 한다. 여덟째, 일상적인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회원소모임, 각종 동아리활동 등을 조직한다. 아홉째, 회원들의 성장과 발전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와 같은 풀뿌리공동체운동에 있어 주민참여의 궁극적 목적은 참다운 공동체 형성에 있다.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삶터가꾸기이고 사람만들기이다. 개개인의 의식 변화없이 사회적 시스템의 변화가 자연적으로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가중심적 사고에 빠져있었다. 근대사회가 국민국가체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우리의 생활도 그러한 관성 속에서 길들여져 왔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사회시스템과 생활양식만으로는 우리의 삶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풀뿌리공동체운동은 사회전체적으로 보면 새로운 사회운영원리를 만들고 쌓아가는 과정이다. 20세기를 포함한 근대사회에서는 제1섹터의 원리인 법과 공공권력의 질서, 제2섹터의 원리인 경쟁과 교환이 주요한 사회운영원리로 작동하였다. 그 결과 현대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안게 되었다. 비대한 정부기구와 막대한 재정적자,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물질만능과 인간소외로 인한 각종 사회적 병폐의 만연,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사회문화풍토 등등.... 정부실패, 시장실패로 표현되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대안으로 21세기 사회운영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자율적 시민참여와 자원봉사의 원리에 의해 운영되는 제3섹터인 것이다. 

풀뿌리공동체운동은 제3섹터적인 새로운 사회운영원리를 사람들로 하여금 체득케 한다. 사람들은 풀뿌리지역사회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참여하여 그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자기존중만이 아니라 타인존중을 배우게 되고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체득하게 되며 자기통제의 기술과 자치의 원리들을 배우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풀뿌리공동체운동이 추구하는 주민의 지역사회 참여는 미래사회를 주도할 새로운 생활양식을 예비하고 훈련하는 과정으로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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