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0일 월요일

지역사회에서 서로 만나 공동체를 일구어가는 우리(2008.10/커뮤니티포럼)

지역사회에서 서로 만나 공동체를 일구어가는 우리!

박홍순(열린사회시민연합 공동대표)

동체 상실이라는 근대화의 비관적 현실은 역설적으로 현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체적 삶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앙중심의 근대 산업화는 많은 문제를 초래하였다. 지역경제의 추락과 주택의 노후화, 전통적 상가의 몰락, 문화시설의 부족 등이 그것이다. 또 그것은 만성적 대량청년실업, 가족붕괴와 범죄, 쓰레기 등 생활환경의 악화, 교육환경의 열악, 사회적 신뢰상실 등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위기를 낳는 원인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의 위기를 보다 깊이 파고들어보면 인류가 당면한 문명론적 딜레마 즉,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적 긴장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과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상호간에 긴장이 본원적으로 존재한다는 이 딜레마는 동서문명의 대표적 이념인 개인주의와 집합주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딜레마로 연결된다.
자유주의(liberalism)는 개인권(individual rights)을 최고의 이념적 가치로 추구한다. 개인이 공동체보다 우선이며,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개인의 자유, 자율을 옹호한다.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는 공동체라는 맥락 속에서 자리한 자아와 자유가 진정한 것이라 주장한다. 공동체를 전제하지 않은 개인이 있을 수 없고 인간형성과 자아실현도 결국은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이들의 최상의 이념적 가치는 개인의 선택에 앞서는 공익, 공생, 공동선(common good)이다. 자유주의가 강조하는 경쟁에 의한 개인의 발전과 계발이 공동체적 유대를 손상시키고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자아낸다. 공동체주의는 공공선(public good)을 앞세워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고 자아실현의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지녔다.
현대문명 앞에 맞닥뜨려진 위기의 돌파구는 바로 이 딜레마의 해결, 즉 개인의 자유, 자율과 공공선의 실현 사이의 모순을 넘어서 조화와 상생의 새 길을 개척해가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인간은 공동체의 틀 속에서 삶을 영위할 때 한층 더 인간적이고 풍요한 사회생활이 가능하며 진정한 자아실현을 맛볼 수 있다. 이제는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동체의 조성에 힘써야 할 때이다. 오늘 날 시민사회는 국가나 시장이 갖지 못한 새로운 인적, 물적, 정신적 자원을 갖춰나가고 있다. 바로 자발적 부문이라는 특성에서 나오는 힘이다.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자발성에 근거한 공익성의 추구, 이것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열쇠이다.
사람들의 지식문화수준, 기술발전과 생산력의 증대, 민주주의의 발전 등 사회의 전반적인 자율화 과정이 높아지고 있다. 시민사회의 두 가지 축은 권익과 책무의 측면에서 형성되는데, 사회발전에 따라 권익주창(Advocacy)에서 자원봉사(Volunteering)로 점차 기능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한국사회도 기본적으로 그러한 추세에 있다. 이에 따라 지역사회(Community)의 공동체 운동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가 처한 많은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받지 않고도 공공선의 실현이 가능할 수 있는 시민문화의 형성, 곧 공동체성의 체득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구체적 삶의 현장, 시민들의 생활세계영역인 지역공동체에서부터 비롯된다. 개개 시민들이 커뮤니티활동의 경험 속에서 참여를 통한 학습이 이루어지며 그것은 곧 볼런티어링(Volunteering)이기도 하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학습에 의해 형성되는 지역사회의 자치역량은 실천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마을만들기(まちづくり)이고 공동체만들기(Community Building)이다. 지역사회를 살기 좋은 공동체로 만들자는 것은 물리적, 경제적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하드웨어적 측면뿐 아니라 공동체적 인관관계의 실현이라는 소프트웨어적 측면도 포괄한다. 또 그것은 지역사회의 운영에 있어 행정과 주민이 동등한 자격으로 파트너가 되어 함께 기획하고 함께 실천해가는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모형을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근의 주민자치운동의 흐름은 마을이나 지구단위의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한 풀뿌리로부터의 운동, 즉 마을만들기와 마을의제 운동, 주민자치센터 활성화운동 등이 양적인 면에서나 관심도 면에서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특정사안에 대한 요구형 운동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적 생활과 관련된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과제들, 육아, 교육, 취업, 건강, 복지, 여가, 문화, 지역개발 등을 해당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해결하고 만들어가는 조성형(助成形)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은 그 특성상 시민들의 자원봉사와 평생학습과 밀접히 연관되며 지역사회내의 네트워크 구축과 행정과의 파트너십 형성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이러한 풀뿌리자치운동은 초기에 헌신적인 활동가나 시민단체가 주도하던 것으로부터 이제는 일반주민출신의 리더나 주민조직의 주도로 그 주체가 옮겨간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 소수의 대안찾기 운동, 모델만들기 운동에서 현실과 결합한 대중적인 운동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방행정, 정부정책과의 연관성이 높아지고 바람직한 민관협력의 추구가 현실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특히 주민자치센터를 매개로 한 지역공동체운동에서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의 주민자치박람회를 통해 소개된 우수사례들을 분석해보면 최근의 흐름을 알 수 있는데, 앞서가는 센터들의 모범사례를 많이 참고, 학습한 효과가 급속히 확대되어 상향평준화되고 있다는 점, 지역적 불균형의 우려를 씻고 전국화되고 있다는 점, 문화와 교육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와 지역복지, 동아리 자치활동, 마을만들기, 마을의제, 지역현안해결 등 다양한 주민자치 프로그램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자원봉사의 활성화는 지역사회문제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의 측면에서나 자치센터 운영의 현실적인 면에서 가장 기초가 되면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자원봉사의 기본 특성은 자발성과 공익성 그리고 무보수성에 있으므로 주민자치와 공동체 활성화의 기반이 되는 활동이다.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는 ‘자원봉사 마을만들기’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의 자원봉사 시스템은 대체로 시군구단위의 자원봉사센터나 단체를 거점으로 각 종 자원봉사프로그램을 시행하고, 필요한 자원봉사 수요에 대응하여 효과적인 자원봉사서비스를 공급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자원봉사 마을만들기’의 접근방식은 다르다. 주민들의 근린생활권에 밀착한 읍면동단위에서 주민들 스스로가 자원봉사활동의 기획자이자 실행자가 되도록 함으로써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주인이 되게 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이러한 방식은 자원봉사프로그램의 현실적응력과 창의성을 높이고 지속성을 담보케 하는 새로운 활동방식이다.
지역사회에서의 평생학습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 주민들이 생활공간인 지역사회에서 학습의 과제를 찾고 이 때 지역과제가 학습과제로 연결되게 되며, 주민의 사회 참가로 이어진다. 주민자치센터는 매우 훌륭한 평생학습거점 내지 단위시설로 활용될 수 있다. 주민자치력의 향상과 지역공동체의식의 함양이라는 자치센터 본연의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도 전제가 되는 것은 지역주민들이 민주공동체의식으로 학습되는 것이 필수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민자치센터에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교육, 문화 프로그램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강사들의 활동과 참여하는 주민들의 동아리 활동들이 공동체시민의식의 학습과 사회적자본 형성에 어떻게 기여하는 지에 대한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 교양․취미교육에 편중되어 개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평생교육의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공동체성을 살린 시민교육의 내용을 확산시킬 수 있을지, 지역사회 중심의 학습공동체에 대한 전망과 전략은 어떻게 마련해갈 것인지, 마을만들기 등 지역발전을 위한 시민참여사업과 평생학습시스템이 어떤 유기적 연관성을 맺어 갈 수 있는지, 평생학습도시 사업이 이러한 제반 영역과의 종합적 고려 속에서 시너지를 높여가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볼 과제이다.
마을만들기는 생활주변의 환경을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개선하고 공용시설이나 장소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마을만들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과정에서의 의사소통과 관계 증진을 만들어 감으로써 공동체만들기, 사람만들기로 나아가는 데 의의가 있다.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시도되어왔던 마을만들기가 이제는 정부의 정책과 결합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전면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마을만들기의 본질을 외면한 외형적 지역개발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하지만 소수자에 의한 실험적 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침체된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발전에 대한 비젼을 만드는 현실의 문제로 접근하게 되면 보다 큰 무게감을 갖고 접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역사회의 혁신은 그 지역에 뿌리박고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의 생각과 삶이 혁신될 때만 가능하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지역사회에서의 풀뿌리시민운동과 그 속에서 길러지는 주민자치의 역량이다. 지역사회의 새로운 발전전략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도 그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지역의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그것의 요체는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자주적 의지와 무한한 창조력을 결합시키는 것이고 그를 위한 새로운 상호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사고방식과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미 이전 시기부터 배태되고 새롭게 성장해 온 자산을 근거로 할 때 현실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 판단에 의해 너무 쉽게 과거의 성과나 축적물들이 무시되고 그 위에 새로운 것들을 급조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지역시민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마을만들기 등 풀뿌리시민운동의 경험과 역량들, 평생학습과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한 지역차원에서의 노력과 경험들과 그 과정에서 형성된 인프라들, 주민자치위원회, 전문적 NPO 등이 그러한 것들이고 이것들을 옳게 결합시킨다면 지역혁신을 위한 밑으로부터의 기반을 형성하는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회의 제 반 구성부분들이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공동의 목적이 설정되고 공유되지 않으면 네트워크의 생명력은 오래 갈 수가 없다. 파트너십은 해당 주체들 간의 상호존중으로부터 시작된다. 파트너가 되는 주체들 상호 간의 이해와 존중이 없이는 진정한 협력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상호 평등한 입장에서 각 주체가 갖고 있는 장점과 능력을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해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주민자치센터를 매개로 한 행정, 민간단체, 기관, 모임, 개인 등 지역사회의 여러 주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진정한 파트너십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바람직한 모델은 책상 앞에 앉아 설계도를 그리는 것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장에서의 실천과 경험을 피드백하고 그 속에서 형성된 의견을 존중해야만 한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지역사회 주체들간의 자발적 협치(Community Governance)는 풀뿌리 주민자치역량이 축적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풀뿌리 주민자치역량은 커뮤니티역량 강화의 핵심적 요소이다. 지역사회의 자치역량을 강화해가는 과제들을 토론할 때 지금 싯점에서 꼭 생각해 봤으면 하는 점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자 한다. 그것은 시민사회운동의 주체들이 기존 NGO의 관성을 넘어서는 일정한 인식의 전환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먼저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를 협의의 시민단체 개념을 넘어서서 제3섹터 일반으로 확대해야 한다. 특히 지식생산과 교육 분야가 중요하고, 사회공익을 추구하는 제반 민간 영역으로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또 NGO는 복지나 분배 영역뿐 아니라 생산과 성장 영역에도 관심 갖고 기여하여야 한다. 또한 참여는 권리일 뿐만 아니라 책임도 뒤따른다는 점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다음으로 ‘경제하려는 의지와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NGO에 참여하는 주체인 일반시민들의 삶 자체가 경제생활을 위주로 이루어진다. 단체나 기관의 운영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공동체, 지역사회 자체가 경제생활과 지속적 성장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비정부기구(NGO)이기도 하지만 비영리기구(NPO)이기도 하다. 시민활동의 측면뿐만 아니라 시민사업의 측면도 발전시켜야 한다. 시장경제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기업부문에 대한 파트너십을 개발해야 한다. 시민들 스스로가 공공재를 창출하는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지역경제의 활력을 만들어가는 협동경제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복지, 교육, 환경, 마을만들기 등의 분야에서 공공목적 실현과 공공재를 생산해내는 커뮤니티비지니스에 대해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같은 활동들은 주민들의 지역정체성, 공공의식의 강화, 지역시민사회의 역량 강화, 사회자본의 형성 등 지역공동체(Community)의 재생과 혁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세기의 성자라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는 마을 스와라지(자치, village swaraj)에 대한 글을 통해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라고 했다. 간디는 그 의미를 설명하면서 ‘스와라지’가 ‘독립’이라는 말처럼 모든 억제로부터의 자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통치, 자기억제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간디의 말 속에 담긴 참뜻을 잘 되새겨 본다면, 탐욕과 무한경쟁으로 점철된 현대의 물질중심문명의 실패로부터 세계를 구할 희망을 ‘마을자치’로부터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커뮤니티포럼의 공동주제토론에 필요한 기본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필자가 이전에 썼던 글 몇 가지를 모아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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