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4일 월요일

광장(2009.6/열린사회회지)

광 장


주민자치센터는 주민들이 서로 교류하고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주민광장이다. 필자가 주민자치위원교육을 할 때 즐겨 사용하는 문장만들기퀴즈의 정답이다. 주민자치센터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소통의 장, 공론의 장, 협력의 장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내는 퀴즈이다. 이어 주민자치의 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도시형성과정에서의 광장의 역할에 대해 예를 든다. 

고대 그리스 도시에는 아고라(agora) 라고 하는 광장이 있었다. 아고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란 뜻이다. 이곳에 시민들이 모여 도시의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고 재판을 하였으며, 서로 필요한 물품들을 거래하고 축제를 벌이는 등 시민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로마시대에는 이 광장을 포럼(forum)이라고 불렀고 오늘 날 자유로은 형식의 토론모임등을 일컫는 '포럼'이 여기에서 연유한다. 산업혁명 이후에 도시의 중심부는 빌딩과 도로 등에 의해 장악되고 광장은 사라지는 듯 했으나 근래에는 도심이 재개발되면서 광장이 새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청앞의 서울광장이 현재의 잔디광장으로 조성된 것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축구대표팀의 응원중심지로 떠오르면서 부터였다. 서울광장의 역사는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제국의 황제 자리에 오른 고종은 나라의 기틀을 새로이 하기 위해 덕수궁 대한문 앞을 중심으로 하는 방사선형 도로를 닦고 앞쪽에는 광장과 원구단을 설치했다. 이때부터 대한문 앞 광장은 고종황제장례식과, 3·1운동,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시위, 6월 항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요무대가 되었다. 가까이는 작년 5월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지난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노제가 열려 광장을 시민들의 물결로 가득 채웠다. 

6월 10일, 6월항쟁 22주년을 앞두고 집회장소 확보를 위해 야당 국회의원들이 돗자리를 깔고 노숙을 감행, TV예능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던 '1박2일'이 수도서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애초의 원인제공자는 정부였다. 이명박정부는 노 전대통령의 장례기간 내내 경찰버스를 동원해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던 잔디광장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시민들의 출입을 봉쇄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던 것이다. 연일 시국성명과 거리시위가 이어지고 또 그에 맞선 사람들의 성명전과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언론도 학자도 시민사회단체들도 서로 패가 갈려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다. 소통과 협력의 장이어야 할 광장은 어느새 단절과 대립의 장으로 변하였다.

우리문화 속에서 '광장'은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어떤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인훈의 대표적인 소설 <광장>에서, 광장은 그 어떤 딜레마적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의 공간'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은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밀실과 사회적 삶의 공간으로서의 광장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는 밀실을 벗어나 새로운 광장을 찾아 월북하지만, 이데롤로기의 광장에서 질식하고 전쟁의 광장으로 내몰려 좌절한다. 결국 중립국을 택하여 떠나는 배안에서 바다로 투신하여 그만의 자유로운 광장으로 날아간다. 반 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의 광장은 이명준의 광장에서 얼마만큼 벗어나 있을까? 

필자가 10여년 전 처음으로 중국여행을 갔을 때 들렀던 심양시 중심가의 중산광장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저녁무렵이었는데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태극권 수련을 하고 있는 사람, 아콘디언을 연주하고 있는 사람, 또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 사교댄스를 추고 있는 노부부 등... 하지만 필자의 주목을 끈 것은 광장의 중심부 모택동동상주변에 몰려 웅성거리고 있던 일단의 군중들이었다. 가까이 가 보니 놀랍게도 그들은 영어회화 공부를 하러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 날 중산광장의 모습은 사회주의 나라 중국에 대해 갖고 있었던 필자의 선입관을 한 방에 날려보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몇년후 유럽여행에서 인상적인 모습의 광장은 독일 퀼른대성당 앞 광장의 풍경이었다. 거리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한 이 광장에서는 판토마임을 하는 사람, 집시풍의 악기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관광객들과 어우러지고 한편에서는 중국파륜궁에 대한 인권탄압을 호소하는 시위가, 또 다른 모퉁이에서는 아프리카 기아난민을 돕자는 사진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러한 광장의 모습은 각자의 개성과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소통하는 광장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물리적인 공간인 광장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저절로 소통과 상생의 광장문화가 형성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누군가가 서울광장이 형성되는 배경을 얘기하면서 '거리를 광장으로 만드는 마술'이라고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는 '공간이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간을 만드는' 문화라고 하였다. 시민들이 위임해준 공권력을 시민들의 광장출입을 봉쇄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화, 광장을 빨간 색 혹은 노란 색 한가지 색깔로만 온통 물들일 때만 성취를 느끼는 문화, 이런 문화가 지속되는 한 광장이 있으되 그것은 광장이 아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소통하는 성숙된 광장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노력만이 반 세기 전 소설속의 이명준과 같은 비극이 오늘날 또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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