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4일 월요일

시민운동과 자원봉사, 융합을 위한 자세와 방법(2010.5/공동세미나)


“시민운동과 자원봉사, 융합을 위한 자세와 방법”



박홍순(열린사회시민연합 대표)


융합은 “서로 다른 것이 합해져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융합을 성공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와 역량으로 한 기업인은 다음의 다섯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소통기술’, ‘관용의 정신’, ‘상생의 자세’, ‘유연성’, ‘상상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자세와 역량은 비단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나 산업의 창출뿐 아니라 오늘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는 시민운동과 자원봉사의 융합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융합을 위한 자세와 방법을 얘기하기에 앞서 현실적 요구와 객관적 조건에 대해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창호 교수님은 발제문에서 시민운동과 자원봉사가 “최근 들어 정치적, 시대적 변화에 따라 서로를 필요로 하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시민운동계가 중앙중심의 공중전식 운동의 한계를 느끼며 풀뿌리 지역 시민운동에 그 활로를 찾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 진보 시민운동이 위축되는 상황을 맞으면서 “학생 또는 주민 자원봉사자(volunteer)들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고 기존 자원봉사계와의 교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이명박 정부 이후 자원봉사계의 관변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시민운동계와 자원봉사계의 연대, 나아가 융합 시도는 바로 이 같은 위기의식에서 자연스레 등장”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소 주관적인 바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재 이명박 정부의 기존 시민운동에 대한 비우호적인 정책은 시민운동의 풀뿌리운동, 자원봉사운동에의 관심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정부비판적이고 정치적인 이슈와 운동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지난 10여년 간 자원봉사의 제도화가 많이 진행되며, 자원봉사계의 기관운영이나 재정 등 많은 부분에서 관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졌고 이는 현실적으로 타부분과의 연대 등 유연성을 크게 제약하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민운동계가 자원봉사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풀뿌리 지역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시기적으로 그 보다는 훨씬 이전 부터라고 보아야 합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시민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자성이 크게 일어났고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시민들의 생활영역인 지역사회에서의 풀뿌리시민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다음 글은 98년경 필자가 시민운동과 자원봉사의 접목에 대해 고민하면서 섰던 글의 일부인데 다소 길지만 당시 문제의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인용해 보겠습니다.

“최근들어 시민운동은 사회 각 분야에서 눈부신 양적 성장과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시민운동은 전문가중심의 활동을 벗어나지 못하며 전국지향적, 중앙중심적 한계를 안고 있다. 시민운동의 기반의 취약성으로 인해 시민운동의 영향력은 주로 언론에 의지하게 되고 이벤트 창출에 급급한 양상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원래 목적이 자발적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사회변화를 추진하고 나아가 권력을 견제하며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라 할 때 시민참여의 여부가 향후 21세기 새로운 시민운동의 지평을 열어나가고 그 건강성과 성공을 판가름하는 핵심문제이다.

‘시민있는 시민운동’이 구호에 그치는 것은 발상의 전환과 구체적 전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민운동은 마치 시민단체활동가나 전문가들 몇몇이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이런 발상에 대전환이 필요하다. 시민단체는 시민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발굴, 연계, 조정하는 코디네이터이며 시민사회의 자발적 힘을 보다 인간적 사회란 방향으로 수렴시켜 나가는 방향제시자이다. 즉 시민단체는 코디네이터 기능을 수행하고 시민볼런티어는 적극적 참여자가 되는 것이 21세기 시민운동 활성화 전략의 핵심이다.“

물론 이러한 시민운동계 내부의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풀뿌리시민운동이 한국의 주류 NGO로 성장하거나 부각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총선연대활동을 정점으로 중앙중심의 정치개혁적 성격을 갖는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점차 하락하여 왔고, 대신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시민운동의 의제들과 실천들이 모색되고 확대되어 왔습니다. 몇 가지 나열해보면 반부패투명성, 인권, 평화, 예산감시, 매니페스토, 자원재활용, 대안미디어, 공정무역, 착한여행, 3세계개발원조, 기후변화대응, 대안교육, 갈등중재, 장애인, 성폭력, 다문화, 은퇴자프로그램, 지역신문, 지역아동센터, 작은도서관, 마을만들기, 도시디자인, 돌봄노동, 자활, 생활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

이러한 새로운 시민운동의 흐름들은 많은 부분 지역사회, 그리고 시민들의 생활세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의제들이고 시민자원봉사자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운동들입니다. 이러한 시민운동의 저간의 흐름이 오히려 자원봉사와 시민운동의 만남을 위한 객관적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시민운동에 대한 공격적 정책이나 자원봉사의 관변화에 대해 반대하는 연대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어떤 현실적 유효성이 있을까요? 물론 시민사회의 자율성 존중, 시민사회 활성화 지원, 올바른(평등하고 미래지향적인) 민관파트너십 등을 위한 비판, 옹호활동(advocacy)이 필요하고 이를 저해하는 사안에 대한 공동대응이나 이의 실현에 필요한 제도마련이나 정책제안에 공조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호간의 교류나 공감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자원봉사계와 시민운동계가 현 정부의 정책에 맞서 막연히 연대한다는 것이 책임성 있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될 수 있을 지 의심스럽습니다. 자칫 정부와 시민사회간의 적대적 관계를 확산하고 고착화시킬 수 있는 우를 범할 수도 있으므로 대응의 현실성과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현실 계기를 잘 포착하고 적절한 대응을 통해 터닝 포인트를 만드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시민운동과 자원봉사의 융합’에는 그 주체들에게 보다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옥 교수님은 “현재 우리사회에서 요구되는 시민적 자질은 시장과 당파성에 포섭되지 않는 ‘공공성의 구현”이라고 하시면서 “탈 당파성과 탈 시장성을 구현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소생가능성을 자원봉사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자원봉사활동은 이성의 공적 사용, 즉 공공성을 구현하는 순수 시민활동이다.”라고 정의하고 자원봉사가 시민운동과 융합할 수 있는 이론적 기초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원봉사활동이 시민사회의 공공성을 구현하는 토대이고 정치로부터의 당파적 간섭이나 영향, 시장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와야 시민사회의 긍정적 역할이 강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시장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어 시민사회의 영역을 침범하고 생활세계를 시장논리로 온통 물들여가고 있는 시대상황에서 자원봉사활동이 탈시장성의 구현을 위한 주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역할부여에도 생각을 같이합니다.

자원봉사는 근대적 시민권(civil right)의 기반인 개인의 해방과 자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발성은 자원봉사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자원봉사의 정신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자원봉사 활동은 한 개인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소속감과 책임성을 자각하고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한 사회성을 특성으로 하고 있으며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생활실천의 장이기도 합니다.

근대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가 무한경쟁과 철저한 주고받기(give and take)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자원봉사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회전체와 그 구성원들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원봉사운동은 근대 진보운동이 실현하고자 했던 ‘자유와 평등’, 또 그 결과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는 물질문명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정착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를 향한 운동입니다. 새로운 사회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넘쳐나는 사회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어떠한 억압과 권위로부터도 자유롭고 어떤 차별로부터도 평등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과 전체공동체의 발전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헌신할 줄 알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자원봉사활동의 탈시장화 가치지향을 무매개적으로 현실 시민운동과 접목시키려 하다가는 현실운동지형 속에서는 반시장주의 운동에 활용되거나 오히려 자원봉사운동의 대중적 이해와 참여를 저해할 수도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를 ‘시민’으로 대체해 낸다는 단절적인 접근이 아니라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시민(prosumer)’, ‘유권자이자 자원봉사자인 시민’과 같은 융합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융합이 가능하려면 ‘관용의 정신’, ‘상생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나만 옳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남의 것을 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보이더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자기 것은 내놓지 않고, 남의 것을 가져다가 자기 것에 붙이려고만 하면 융합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경쟁이 남을 이기는 게임이라면 융합은 남이 살아야 나도 사는 게임입니다.”

그렇다면 시민운동과 자원봉사 융합의 동력은 어디서 생겨날 수 있을까요? 그 첫 공정은 교류와 ‘소통’에서 출발합니다. 융합을 이루려면 먼저 남의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의 소리가 귀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하고 남의 것이 눈에 보여야 합니다. 한봉협과 시민단체연대회의가 세미나 등 상호 교류를 정기화하고, 공동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상층에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지만 현장에서 실질적인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자원봉사관리자와 시민단체활동가들 사이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 도구를 통한 일상적인 정보교류와 소통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교육과 훈련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권익과 책무 양 측면을 함께 갖고 있는 시민사회를 균형감있게 이해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 관점과 방법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교육과정에 상호 강사파견도 시도해볼 수 있고 공동워크샵을 통해 공동생산의 경험을 축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통의 시민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교육과정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과 자산을 상대방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시군구마다 설치되어있는 자원봉사센터를 지역사회내의 풀뿌리시민단체와 시민자원활동 그룹들을 위한 지원센터로 변모시키는 노력을 한다면 이는 융합을 위한 매우 좋은 조건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태도와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시민운동계와 자원봉사계 단일 협의체 구성과 같은 형식을 앞세운 섣부른 비젼 제시는 오히려 ‘유연함’을 잃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자원봉사마을만들기’와 같은 프로그램은 풀뿌리시민운동과 자원봉사활동이 잘 결합된 좋은 예입니다. 지역아동센터, 작은도서관운동, 마을만들기운동과 같은 영역에서는 자원봉사와 시민운동의 결합이 이미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를 지원하거나 관리하는 시스템을 지배하는 관성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미 있는 것들을 조합해서 조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그렇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관성을 넘어서는 ‘창의적인 태도’는 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