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매니페스토운동의 성과와 과제
정부여당의 무능과 실책에 대한 국민적 심판으로 귀결된 531지방선거가 끝났다. 그동안 주민자치운동을 전개해온 필자로서는 지방자치선거 본연의 성격이 실종된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와 관계없이 이번 선거는 한국정치발전을 위한 소중한 교훈을 남겨준 선거였다고 생각한다. 선거결과의 정치적 해석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이번 선거과정에서 제기된 매니페스토운동은 인물과 정당 중심의 선거문화 속에서 무책임한 공약이 남발되고 정책이 실종되었던 그간의 한국정치문화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부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대이상의 반향을 얻음으로서 우리사회에 선진적 정책선거문화를 뿌리내리고 성숙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고, 올해를 매니페스토 원년으로 기록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자부를 해본다.
일반적인 매니페스토운동의 특성과 더불어 이번 513매니페스토운동에서 나타난 고유의 특성을 살펴보면 첫째로 SELF지표가 보여주고 있듯이 지방자치발전에 있어 우리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합의가능한 시대적 과제와 지향점을 담은 내용을 평가지표에 적용함으로써 일정한 가치지향성을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방자치의 발전정도가 미약한 한국의 현실에서 이를 운동을 통해 극복해 보고자하는 주체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매니페스토운동의 도입과 전개에 있어 시민단체들의 주도성(initiative)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영국과 일본의 경우 매니페스토 운동에 정당이 선도적, 혹은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한국에서는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정책선거문화를 이끌어나갔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지난 총선시기의 낙천낙선운동 등을 통하여 이미 확보한 사회적 영향력과 비중을 바탕으로 과거의 네가티브한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포지티브한 방향에서 매니페스토를 수용하고 전개하였다.
세 번째로 지역으로의 확산을 꾀하고 각 지역별로 해당지역의 정당, 후보자와 유권자, 시민사회와의 협약을 추진함으로써 로컬 거버넌스(Local Governance) 토대구축에 기여하였다는 점이다. 운동주체의 조직방식에 있어서도 중앙추진본부와 지역추진기구간의 협약을 체결하여 활동하는 등 각자의 독자성을 존중하면서도 신뢰와 지원을 통한 공동의 목적달성을 꾀한 네트워크 방식을 구사하였다.
네 번째로 좋은 정책 뱅크 구축과 제안운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정책대안을 제공하고 정책형성과정에의 시민들의 참여통로를 만들어가는 운동을 함께 병행했다는 점이다. 시민사회단체들과 각종 연구기관에서 개발하여 제시해 온 수많은 지역정책과 지역발전의 대안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출마자들에게 제공, 활용토록 했으며, 인터넷공간을 활용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생활과 밀접한 정책공약을 만들고 이를 후보자들과 연결하는 공약은행사업이 전개되었다.
선거의 결과는 한국에서 정책선거 정착의 길이 아직도 멀고도 험난한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선거가 지방선거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정치에 대한 지방정치의 예속, 지방선거 정당공천제의 폐해, 동시선거의 불합리함 등으로 인해 전혀 지방선거로서의 독자적 특성은 발현되지 못하고 중앙정치의 중간평가적 성격에 그치고 만 점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이는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케 해 준 것이고 또 지방자치발전을 위한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선거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531선거를 매개로 전개된 매니페스토운동의 의의와 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중앙선관위가 의뢰한 5월 8-9일의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전국 1,500명) ‘참공약 선택하기’(매니페스토) 인지도가 21.3%로 나타났고, 67%는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대답한 것을 보면 매니페스토가 처음 소개된 지 불과 3~4개월만에 대중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보자들의 공약내용을 들여다 봐도 지난 선거의 공약들이 유의미한 공약비교평가를 하기 힘들 정도로 구체적 근거가 너무 빈약했던 데 반해,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가 이행여부를 판단해볼 수 있는 수치화된 목표치의 제시, 재원조달방법이나 시간계획표의 제시 등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실적 실현가능성을 구체화한 공약들이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후보자들은 TV토론회에서 구체적인 수치가 들어간 공약을 내놓고 실천 가능성에 대해 치열하게 다퉜다. 선거운동에서도 조직전과 홍보전의 전문가들보다도 정책개발 전문가가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531지방선거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운동의 분위기도 일정한 변화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당이나 후보자를 음식점이라고 하고 공약들을 각종 음식메뉴로 비유를 들어 얘기해본다면 과거의 낙천낙선운동이 불량식품을 판매했던 전력이 있는 음식점 앞에서 피켓을 들고 불매운동을 벌인 것(정당, 인물 중심)이라면, 이번의 매니페스토운동은 유권자들에게 각 음식점의 요리메뉴에 대한 평가의견을 제공함으로써 유권자 스스로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정책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시민 중심의 시민운동’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와 함께 과거 시민단체에 대해 사회일각에서 제기했던 과잉대표성논란이나 위법성논란을 잠재운 것도 변화의 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또 사회발전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여러 부문들이 상호협약하고 협력해서 노력해나가는 거버넌스의 문제의식을 실천활동을 통해 심화시켰고, 지방자치의 발전과 지역시민사회의 활성화를 위한 시민운동의 역할에 대해서도 성찰적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는 향후 한국시민운동의 발전방향과 관련해서도 간과할 수 없는 시사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니페스토운동은 단순히 선거시기의 참공약 선택하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의 공약이행평가와 결과공개이다. 그를 통해 다음 선거에는 보다 진전된 실천가능한 공약을 후보자들이 약속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매니페스토는 하나의 순환사이클을 그리며 진보하게 되는 것이다.
또 매니페스토운동은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도 계속된다. 대선과 총선은 우리나라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국가의 중요정책과 담당자를 결정하는 선거이다. 때문에 집권기간에 정부여당이 추진할 국정과제로드맵을 미리 제시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는 정권매니페스토의 제시는 예측가능한 국정운영을 가능케하고 준비된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다. 이는 한국정치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끝)
댓글 없음:
댓글 쓰기